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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복음묵상]참된 제자의 도 : 겸손과 섬김의 삶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5 조회수920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년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마태오 20,26-27)

 

 whoever wishes to be great among you shall be your servant;
whoever wishes to be first among you shall be your slave.

 

  

 

 예수님께서는 무릇 지도자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백성을 섬기는 사람임을 강조하십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

 

 많은 사람이 첫째가 되고 싶어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첫째’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주님께서 경고하십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 또 첫째가 되려면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알아듣기 쉽지 않은 가르침입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제우스가 크로노스의 막내아들로 태어납니다. 크로노스는 자신이 아버지 우라노스에게 잘못한 반역을 기억하여 자신처럼 자식들이 자기에게 대항할까 두려워 자식들을 모두 삼켜 버립니다. 그런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제우스가 요정 손에서 자라나면서 구토 약을 구해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다줍니다. 그 덕분에 아버지는 자식들을 토해냅니다. 따라서 제우스가 첫째가 됩니다. 이 신화는 나름대로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한 가지 경우를 설명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첫째가 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노력해서 둘째가 되는 일도 중요하고 필요하지 않을까요? 너무 일등만을 찾는 우리의 현실이 갑갑하지 않습니까?

 

 

             † 참된 제자의 도 : 겸손과 섬김의 삶


   오늘은 12사도 중의 하나이며 성 요한 사도의 형인 야고보 사도의 축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인류구원을 위한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사람들을 제자로 불러 당신을 따르게 하시고, 그 중에서 열 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시는데, 12사도의 이름은 시몬 베드로,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 야고보의 동기 요한,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나타나엘), 마태오, 토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데오,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가리옷 사람 유다입니다.(마르 3,13-19; 마태 10,1-4; 요한 1,35-51 참조)


   여기서 우리는 오늘 축일을 맞는 야고보성인과 5월 3일이 축일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성인을 구별하기 위하여 전자를 성 야고보(대), 후자를 성 야고보(소)로 구별합니다. 그는 베싸이다 태생으로 어부였던 아버지 제베대오와 어머니 살로메의 아들입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제자로 삼으신 직후, 아버지 제베대오와 더불어 그물을 손질하던 야고보와 요한을 불러 제자로 삼았습니다.(마태 4,18-22)


   야고보는 44년경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됨으로써 12사도 중 첫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으며, 전승에 의하면 성인의 시신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안장되었고, 오늘날 여기에 대성전이 서 있습니다.


   복음서 전체에서 야고보 사도는 애제자로 통하는 자기 동생 요한과 수제자인 베드로와 함께 셋이서 자주 등장합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께서 이 세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가신 것을 보면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생각이 각별했던 모양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럽게 변한 모습을 이들에게만 보여주셨고(마태 17,1-8; 마르 9,2-8; 루가 9,28-36),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도 예수께서는 이 세 사람과 그의 부모만 따로 데리고 방에 들어가 아이를 소생시키는 기적을 목격하게 하셨습니다.(마르 5,21-43; 마태 9,18-26; 루가 8,40-56) 뿐만 아니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신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려가시어 게쎄마니 동산에서 고통과 번민에 싸여 기도하며 보내신 마지막 시간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마르 14,32-42; 마태 26,36-46; 루가 22,39-46)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게 "보아네르게스"(천둥의 아들)란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하는데(마르3,17), 그 이유는 루가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지막날이 가까이 왔음을 아시고 예루살렘으로 상경하는 길에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에 묵어가기 위하여 선발대를 보냈으나 거절당하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하고 묻습니다.(루가9,51-54) 물론 두 사람은 예수님께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들었는데(루가9,55), 그 꾸지람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오늘 복음에도 거듭됩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가 마르코의 원전(마르 10,35-45)을 그대로 베낀 것인데, 딱 한 군데만 고쳤습니다. 즉, 마르코는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예수께 와서 도래할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 자리를 각각 주시기를 청했다고 하지만, 마태오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와서는 어머니가 예수께 청을 드리는 것으로 고쳤습니다.


   마르코와 마태오의 예수님 수난사를 종합하면 이 어머니의 이름은 살로메인데(마르 15,40; 마태 27,56), 왜 마태오는 느닷없이 죄 없는 어머니를 이 장면에 끌어넣었을까요?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데, 마태오는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야고보와 요한의 체면을 생각하였고, 사도단 가운데서 그들이 차지하는 명예를 지켜주려 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타 섞인 말씀은 어머니를 건너 뛰어 두 제자에게 향합니다.(22-23절) 또한 다른 열 제자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화를 냅니다.(24절) 그렇다면 나머지 열 제자들이 화를 낸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문제의 발단은 사실상 앞서 간 복음에 있는데, 우선 "부자청년과 낙타와 바늘귀"(마태 19,16-26)의 대목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께 자기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니 무엇을 받게 될 것인지를 묻자, 예수께서는 "너희는 나를 따랐으니 새 세상이 와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때에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하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19,27-28)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 백 배의 상과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라고 했으니 제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들떠 있었고 뿌듯했겠습니까? 열 두 제자들은 제각기 속으로 주님의 좌우자리를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태가 이쯤 되면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 예고(20,17-19)도 그들에겐 들리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모두를 불러놓고 참된 제자상을 가르치십니다. 참된 제자란 봉사하는 자이며, 종 중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옥좌의 자리는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야고보 사도처럼 순교로 목숨을 내어놓은 후에 받게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참된 제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저 종으로서 봉사해야 하는 일만 있을 뿐입니다. ..........◆

 

-박상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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