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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4 > 못 말린다, 못말려!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5 조회수939 추천수11 반대(0) 신고

 

                      못 말린다, 못말려!



   지난 5월에 은퇴 신부님을 모시고 설악산과 백암온천에 3박 4일 일정으로 효도관광(?)을 다녀왔다. 거기에는 본당 수녀님과 자매님 몇 분이 동행했다. 다음은 그 몇 가지 얘기다.


   함평에서 식구들을 태우고 새벽 일찍 출발하여 광주에 도착하니 신부님께서도 다 준비하신 채 기다리고 계셨다. 잡수실 것은 장만치 마시라고 미리 말씀드렸는데도 수십 가지의 반찬그릇들이 큰 보따리로 두 개였으며 옷가방도 하나가 아니었다. 사실 신부님은 땀이 많으셨고 잡숫는 것은  또 끝내 주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운전석에 앉은 내가 미덥지 않으신지 먼 거리의 안전운행에 대해 태산 같은 걱정을 계속하고 계시니 사람 참 미칠 일이 었다. 염려 놓으시라고 안심을 시켜드리던 나도 끝내는 주눅이 들고 기가 팍 죽어 갑자기 앞이 안 보이면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노인 신부님 모시다가 내 생전 참 별 요상한 일을 다 겪어 보기도 했다.


   경포대에서 생선회로 점심을 먹고 리조텔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맛은 정말 멋진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수녀님들을 꾀어 100원 내기 민화투를 치는데 신부님은 마음에 썩 드시지 않는지 주방 아줌마를 불러내어 옆방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들으라는 듯이 바치고 계시니 화투판은 그만 죽사발이 되어 버렸다.


   기도를 끝내신 신부님이 화투판에 들어 오시더니 첫 판엔 청단으로 거금 일천칠백 원을 긁어 가셨고 다음 판에도 계속 약을 하시면서 돈을 따시는데 이 또한 사람 미칠 일이었다. 화투도 기도하고 쳐야 돈을 따는 것인지 어이가 없어진 한 자매가 불쑥 한마디했다. “못 말린다, 못말려!”


   대청봉에 오르는 날은 새벽 일찍부터 서둘렀으며 일부 못 오르시는 분들에겐 다른 코스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갑자기 안 가시겠다고 브레이크를 거셨다. ‘아니, 예까지 와서 산에 안 가시다니요?“ 당황해진 우리가 한계령으로 해서 그 유명한 백담사 구경을 하고 온천에 가시자고 설득도 하고 아양도 떨었으나, 당신은 기도 바치실 일이 많기 때문에 오전엔 결코 나가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었다. 맥이 풀린 자매가 한마디 더 했다.

   “정말, 못 말려!”


   신부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온천욕이었다. 온탕과 냉탕을 왔다갔다 하면서 즐기시는 모습은 정말 기쁘신 듯이 보였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도 삼사십 분이지, 장장 두 시간을 탕 안에서 계시니 기다리던 나도 진력이 나서 나도 모르게 주둥이에서 한마디가 툭 튀어 나왔다. “못 말린다, 못말려!”


   여행은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다. 신부님 땜에 더욱 그랬다. 나중엔 수고했다시며 오징어와 미역을 듬뿍 사주시기도 했다. 어른을 모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른 중심으로 모셔야 하는데 젊은 우리가 자기 뜻대로 하려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신부님, 가을에 다시 갑시다!”

http://my.catholic.or.kr/vegabond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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