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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0 > 한잔 먹자, 강길웅!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05 조회수962 추천수8 반대(0) 신고

     

 

 

                      한잔 먹자, 강길웅!



   어렸을 때부터 술지게미의 유별난 맛에 길들여진 내가 본격적으로 술을 입에 댄 것은 중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때였다. 그때 우연히 친구들의 하숙방에 놀러갔다가 술 한 병을 혼자서 몽땅 마시는 오기를 부렸는데 술 이름이 ‘징’이라고 하는 파란 술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인사불성이 된 나는 결국 그런 식의 오랜 술버릇에서 깨어나지를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런데도 나 자신은 ‘중독자’ 라는 사실도 모르고 그렇게 마시고 흥청대며 비틀거려왔다. 사범학교 때는 술집에서 하필이면 학생과장 선생님과 맞닥뜨려 무기정학도 받았으며 선생이 되고 난 후에도 도무지 주체를 못 하는 음주습관 때문에 사고가 불쑥불쑥 터지기도 했다.


   동료 선생들과 직지사에 함께 놀러 갔다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때 계곡에서 소주를 댓병으로 마신 것이 너무 지나쳤었나 보다. 김천까지 업혀서 차에 실린 채 잘 왔으나 역전의 어느식당에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슬그머니 밖에 나와 토할 곳을 찾는다는 것이 그만 그대로 정신이 가 버리고 말았다.


   눈을 떳을 때는 서울의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내가 그곳을 아는 것은 군대에서 휴가 왔을 때 부대로 가는 버스를 그곳에서 탔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큰일이었다. 날은 저물고 호주머니의 돈은 떨어졌는데 어떻게 대전 집을 찾아갈지 실로 암담하고 참담했다.


   이번에는 온양온천의 어느 거리가 눈에 비쳤다. 온양은 내가 섬마을 선생 3년 할 때에 자주 지나던 도시였기에 눈에 익었었다. 그런데 내가 서울에서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는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 그곳은 충남권이라 학교마다 동창 선생들이 있기 때문에 차비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또 정신이 가버렸다.


   도대체 내가 어디서 어떻게 있다가 철길을 따라 걷고 있었는지를 몰랐다. 분명한 것은 내가 김천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며 이미 날이 저문 캄캄한 역전 광장에는 기차를 벌써 서너 번이나 떨군 채 동료 선생들이 나를 찾느라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비몽사몽간에 결국 김천 시내에서 서울과 온양을 왔다갔다 했던 것이다!


   나는 사실 술에 대한 전과가 많다.

   한번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대전의 어느 술집에서 막걸리 서너 되를 순식간에 마시고 나니 자연히 소변이 급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인으로부터 화장실의 위치를 물어 어둔 골목을 돌고돌아 드디어 문을 열고 일을 열심히 보는데 갑자기 안에서 “누구야” 하며 사람들이 소리치기에 깜짝 놀라 무작정 도망을 치고 나서 생각하니 내가 남의 집 안방에다 갈겨댓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친구를 찾고 술값을 가리기 위해 다시 그 술집을 찾고자 했으나 도대체 내가 어디서 마시고 어떻게 도망친 줄을 몰라서 술집에 친구를 잡혀 놓고는 그냥 돌아서 버린 사건도 있었다.


   난 사실 어렸을 때부터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중학생 때 생 후 1년도 안된 동생이 몹쓸 병에 걸려 치료를 하다 빚만 몽땅 짊어지게 되자 부모님이 사범학교로 나의 진로를 결정했으며 내가 다시 본래의 꿈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나이 서른이 이미 넘어 있었다.


   신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그때 난 정말 신학교의 수위나 청소부만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랬고, 더 이상의 욕심과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느닷없이 나를 그 축복의 자리에 불러 주셨으며 내가 술을 끊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공부도 쉬웠고 세월도 빨랐다. 그러나 중간의 어느 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딱 한잔 마신 것 때문에 둑이 온통 무너지게 되었다.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기에는 실로 역부족, 사람의 이성으로도 안 되며 신앙의 힘으로도 부족했다.


   신부가 되고 나서는 술 마시는 기회가 자주 생겼다. 그리고 입에 술기운이 있을 때는 즐겁고 재미있었으며 신자들도 좋아하곤 했다. 그러나 점차로 마실 때마다 자주 토하고 기억을 잃게 되었으며 나도 모르게 이상한 언어와 행동의 조짐이 나타나곤 했다.


   고백성사도 수십 번 보았다. 그러나 불과 몇 주일이었고 다시 마셨다 하면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곤 했다. 그게 바로 중독증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얼마든지 술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술을 자주 마셨던 것은 아니다. 술자리에선 차츰 불안해 하면서 변명을 늘어놓게 되었으며 술 얘기가 나오면 은근히 겁을 집어먹게 되었다.


   내가 술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외국인 신부님을 통해서였다. 그분은 나를 모르면서도 내 술사정을 적나라하게 파헤첬으며 족집게처럼 내 실상을 들춰내 보였다. 실로 귀신이 곡할 정도였다. 알고 보니 그는 나와 똑같은 알코올 중독자였으나 나보다는 훨씬 전에 해방이 된 자유인이었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치유가 되었으며 오랜 노예생활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내가 알코올 중독자인 줄은 정말 몰랐다. 묶인 것을 알아야 해탈을 한다 했거늘 자신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가! 실로 하느님께 감사드렸고 그 신부님께 감사드렸으며 그 동안 술꾼인 나를 참아주고 이해해 주고 용서해 주었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잔 먹자, 강길웅!’


   이것은 내가 오랫동안 가슴팍에 달고 다닌 명찰 아닌 명찰이었다. 그러나 그 못된 것을 떼고 나니 태양은 분명히 다시 떴으며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환하게 열리고 있었다.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

 

                     

 

Chopin - Nocturne No.2 in E flat major O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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