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오늘 복음 묵상]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04 조회수811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년 7월 4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포르투갈의 성녀 엘리사벳 기념


 

"주님,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 왜 그렇게 겁이 많으냐?” (마태오 8,25-26)

 

"Lord, save us! We are perishing!"

 "Why are you terrified, O you of little faith?"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호수를 꾸짖어 풍랑을 잠재우십니다

 

☆☆☆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는 가운데에서도 주무시는 주님의 태평스러움은 가히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믿음이 약한 것을 탓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지난날의 상처를 곱씹거나, 닥치지도 않을 미래의 일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 98%나 된다고 합니다. 정작 우리가 직면해야 할 걱정은 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내일 걱정을 내일에 맡기고 우리의 모든 걱정을 하느님께 맡긴다면, 우리도 주님처럼 풍랑 속에서도 평화롭게 잠을 잘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날을 주님과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 


오늘복음에서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풍랑이 거세게 달려들자 겁을 먹고 있습니다. 어부들이 겁을 먹을 정도였다면 얼마나 심한 풍랑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심한 풍랑, 즉 인생의 고난을 겪고있는 예수님의 배에 우리도 올라타서 함께 풍랑 속으로 묵상을 들어가 봅시다.


첫째, 어제복음에서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대로, 제자들도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자 함께도 따라 올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한 배가 거센 풍랑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에서 장차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의 길이 얼마나 험한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자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실 주이신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갈릴레아 지방의 호수, 즉 정확히 표현하면 겐네사렛 호수는 길이가 20키로, 폭이 10키로로서 서북 혹은 남서풍이 여기로 불어오면 거센 풍랑이 일게됩니다. 풍랑에 익숙한 어부들이었지만 심한 풍랑 속에서 겁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대자연의 혼란 중에서도 고요히 잠들어 계신 하느님의 아들과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이 가냘픈 제자들의 모습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를 본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면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주무시고 계신데 제자들은 겁을 먹고 있으니...그런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제자들이 훨씬 더 능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삶의 자리가 바다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헤쳐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주님을 붙들고 매달립니다(우리 모습이고). 아니 헤쳐나갈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제자들의 모습)

그런데 그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그 위기를 헤쳐나갈 유일한 방법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극한상황에서 "아, 예수님이 내곁에 계시지..."하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바다를 안방 드나들듯이 능숙한 사람들이 위기를 맞으니까, 자기들의 무능을 인정하고 바로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된 이후에 어떤 형태로든지 주님이 누구인지를 어느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상황을 바꿔 주시리라는 것을.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님!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이제 이렇게 우리 죽게 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제자들의 호듭갑에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왜 그렇게 겁이 많으냐?" 하시고 나서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자 사방이 아주 고요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했다구요? 예수님의 첫번째 말씀은 부드러운 꾸지람이었습니다. 아마도 피곤한 눈을 비비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뭐가 걱정이여. 나도 너희들이랑 같이 있잖느냐? 내가 누구냐? 설마 내가 너희들 버리고 배신을 때리겠냐? 나, 아까... 니네들 병자 고치느라고 고생하는 것 봤지?...바다야..조용히 좀 하거라. 나 무지 피곤하다...”......아그야, 알간???(조폭 두목같은 목소리로...)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제자들이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작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작은 믿음만으로는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으로서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왜 그렇게 겁이 많으냐?”라는 말씀은 오늘 나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내 뜻대로만 해결하려고 하고, 예수님께는 청하지 않는 나. 혹시 그분이 안들어 주시면 어떻하지?하는 의구심보다는 “설마 그분이 들어주시려고...”하는 불신과 체념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 나. 그런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나의 신앙을 키우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하튼 바람과 바다를 일갈에 잠재우시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하는가?" 하며 수군거리면서 매우 당황했습니다. 말씀 한마디에 풍랑이 잔잔한 호수로 바뀌었으니 말입니다. 어부들은 바다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바다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잔잔한 호수로 바뀌니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여러분 만약에 내 삶 안에서 그런 경우는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성당 다니지 않겠다던 배우자가 갑자기 성당에 다니겠노라고 선언할 때,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부족한 믿음으로 무엇인가를 청했는데 그분께서 들어주시면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그 당황 속에는 자신의 불신에 대한 죄스러움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예수님 앞에서 “내가 줄은 참 잘섰지..”하는 기쁨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앞으로는 굳게 믿을 것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복음에서와 같이 우리는 항상 어려움 속에서 일을 해결하려 할 때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마음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나 혼자, 나 스스로 해보다가 안되면 포기하는 그런 자세는 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인내를 가지고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제자들의 청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약하다고 크게 탓하지 않으시고 더 키우라고 행동으로 보여 주고 계십니다. 혹시 내 신앙이 커 가는데 있어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까? 조만간 그런 체험이 있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아멘)...........◆


-박상대신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