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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 (9) / 송봉모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04 조회수842 추천수7 반대(0) 신고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 <대속적인 고통관> (9) 

 

이 대속적인 고통관을 제일 처음으로 보여 주는 인물이 우리의 성조 요셉입니다. 형들의 질투를 받아 살해당할 뻔 했다가 이집트 종으로 팔려갔던 요셉이 우여곡절끝에 이집트의 재상이 됩니다.

 

그리고 가뭄이 들었을 때, 그 식량을 사러 왔던 형들 앞에서 요셉이 이렇게 애기합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형님들보다 앞서 이곳 이집트로 보내신 것은 형님들의 종족을 이 땅에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질투해서, 자기를 죽이려 했던 그 사실을 다 잊어 버리고, 아니 잊어 버린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고통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하느님 섭리의 도구로서 자신이 이집트까지 팔려 갔고, 종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바로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아버지 종족들이 살아남게 됐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이지요.

 

이런 모습을 보인 인물이 또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통 받는 야훼의 종입니다. 야훼의 종은 자기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단련받기 위해서 고통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가 고통을 받는 것은 오로지 우리 모두의 허물과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울만큼 멸시만 당했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은 줄로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셨구나! 우리 모두 양처럼 놀아났지만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요셉과 고통 받는 야훼의 종을 통해서 고통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은 구약의 인물중에 유일하게 고통 앞에서 묵묵히 받아낸 사람입니다. 유일한 두 분입니다. 불평 없이 고통을 겪었던 분이고 이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고통을 통해서 바로 다른 이들의 선과 행복을 준 것입니다.

 

다른 인간의 선을 위해서 받는 이 대속적인 고통이 절정에 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무런 죄도 짖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이 분이 엄청난 고통을 겪으시고 십자가에서 개죽음을 당하십니다.

 

의인중의 의인이신 분께서 모함을 받아 대역죄인으로 돌아가시는데 한 번도 반항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고통의 수난을 받아들이십니다.그 분은 우리 죄를 몸소 당신 몸에 지니시고 나무에 오르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로움에는 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매맞은 상처로써 우리들은 낫게 되었습니다." 라고 베드로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 째 고통관, 대속적인 고통관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우리 중에 많은 신앙인들이 자진해서 고통의 제물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 대다수는 참으로 굳센 신앙과 고결한 영혼을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의 고통을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참고 견디며, 젊은 사람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꺼운 마음으로 희생과 보속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관을 지금 이자리에, 살아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이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어떻게 사색했는가? 다섯 가지를 보았습니다. 마치 우리들이 고통스러울 때, 우리들 나름대로 이유를 대어가면서 견디듯이 성경의 인물들이 우리보다 앞서 고통스러울 때, 자기들 나름대로 고통의 이유를 대어서 견딘 것입니다. 이유가 있으면 견딜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성경의 인물들중에 어떤 사람은 고통을 자기의 죄 탓으로 보았고, 어떤 인물은 고통을 조상의 잘못이나 타인의 잘못으로 보았고, 또 어떤 이들은 고통을 신비로 보았고, 또 어떤 이들은 고통을 신앙인들이 단련 견책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보았고, 또 어떤이들은 고통을 다른 이들의 선과 이익을 위한 대속적인 고통으로 보았습니다.

 

이상 다섯가지 고통관중에 과연 어떤 것이 올바른 고통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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