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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6>노미나시오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30 조회수849 추천수9 반대(0) 신고
 

  

                                               노미나시오



   구교 집안에서 태어난 탓인지 난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이 좋았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면 하느님도 나만 사랑해 주셨으며 내가 하느님을 찾으면 하느님도 나만 찾아 주셨다.


   내가 부제 때에는 미리 점을 찍어 둔 본당이 있었다. 늦게나마 신부가 될 수 있는 은혜에 대해서 하느님께 드릴 감사란 가난하고 힘든 본당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주교님으로부터 처음 노미나시오(인사발령)를 받았을 때는 기도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드렸다. 하느님은 바로 그곳에 나를 보내셨으며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본당에서 일한다는 기쁨과 은혜로서 살았다.


   그곳은 가난했다. 냉담자, 조당자도 많았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하느님의 은혜가 철철 넘치는 곳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그리스도의 빛이 더 밝게 빛나듯이 힘든 곳에는 언제나 하느님의 특별한 애정이 빛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도시 본당으로 왔을 때는 이렇게 좋은 본당도 있나 싶어서 감격스러웠다. 도시는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었고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그 결과가 언제나 눈에 보였다.


   도시는 풍요로웠다. 인적자원도 많고 돈도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협조를 얻었다. 그리고 본당 신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껴 주었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갈등도 있었다.


   모두들 잘해 주시니까 교만하게 되었고, 칭찬이 많을 때는 예수님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렸다. ‘내가 잘 났다’ 고 허세의 불을 켜고 있으니 그리스도의 빛을 잘 볼 수가 없었다.


   사제의 길은 묘한 것이어서 어렵다고 생각하면 일이 옆에서 감싸 주고, 쉽다고 생각하면 의외로 어려움에 부딪히곤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지만, 어려울 땐 하느님께 매달리니 쉬울 수밖에 없고 편할 때는 하느님을 덜 찾으니 어려움을 만나는 것이다.


   다시 또 이동시기가 되었을 때는 좀 어려운 본당에 가겠다는 욕심으로 마음에 꼽아 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리고 신부님들도 임기가 만료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받은 노미나시오는 미처 생각지도 못하 곳이었다.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다. 하느님이 “가라”하시면 “예” 하고 가는 것이지, 뭘 어디로 가고 싶다 어쩐다 하는 것이 다 교만에서 싹트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본당에 공소가 10개나 된다고 하기에 위로를 받았다. 신부는 평생 영전만 하는 것이다. 언제나 새로 부임 되는 그곳이 세계 제일의 본당이 되는 것이다. 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렸더니 “신부님, 잘 되셨습니다” 하며 기뻐하셨다.


   어폐가 있는 것 같지만, 내가 하느님을 믿으면 하느님은 날 믿어 주시고, 내가 하느님을 따라가면 하느님도 날 따라오신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3악장 All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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