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14) 제 복(福)대로 사는거지 뭐....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9 조회수746 추천수4 반대(0) 신고

 

 

 

지난 해 가을, 아들이 여자친구 어머니와 함께 넷이서 점심식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약속된 장소로 갔다.

예전엔 수목원이던 곳이었는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두어번 가보고 나서 오랜만에 가보니 많이 달라져 있었다. 호텔도 들어서고 못보던 건물들이 여러개 들어서서 수목원의 기능은 사라지고 업소들로 변해있었다.

 

그럴듯한 옛날식 기와집으로 지어놓은 한정식집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코스로 들어오는 식사를 하는데, 음식맛이 별로였다.

신선로라고 한사람 앞에 하나씩 놓았는데, 참 말이 좋아 그렇지 종재기만한 놋 신선로에 들어있는 것이라곤 골패쪽만하게 썰은 부침개 몇개 뿐이었다.

차라리 큰 신선로에 모듬으로 했으면 맛이야 어쨋든 보기라도 푸짐하지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도 아니고, 하도 같잖아서 신선로도 있다는 선전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은근히 속이 뒤집혔다.

갈비라고 내어온 것도 한사람 당 두쪽인데 화투짝만했고 후식도 앵두차라고 했지만 시금털털했다.

 

화장실에 잠깐 가는데 아들이 계산대로 가면서 얼마냐고 묻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24만원이라는 소리에 나는 기겁을 하게 놀랐다.

아니 먹은게 뭐 있다고 24만원이란 말인가.

방 하나 차지하고 한시간 여 있었던게 고작인데......

거기다 방이라야 아주 작은 것이었고, 열린 방문밖으로 보이는 뒤란에 옹기 항아리만 있는 장독대가 전부이고 꽃한송이 피어있지 않은 뒤꼍을 보며 무슨 감상을 한게 있다고, 그렇게 비싼 값을 받으려면 최소한 뒤란에 화단이라도 가꿔 놓아 꽃 요기라도 시켜줘야 하는게 아닌가. 

 

아이구! 기가 막혀!

차라리 다른 곳에 가서 먹고 찻집에 갔더라면 절반도 안들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음식맛 없고 값만 비싼 집에서 바가지 썼다는 생각에 돈이 아까웠다.

월급 타는 주제에 무슨 갑부라고 희떱게 풍풍 돈을 쓰고 다니나 하는 생각에 못마땅한 마음이었다. 전에도 여자친구와 함께 점심먹자고 해서 셋이 먹고 꽤 비싼 지불을 한 걸 아는데다 그 후엔 아가씨 엄마를 모시고 식사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서 집에 와서 슬쩍 물어보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더치페이도 잘한다는데 네 여자친구는 어떠냐고.....

아들녀석이 여자 사귄다고 대책없이 풍풍 쓰다가 혹시 마이너스 통장에 빚만 쌓이는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서였다.

그랬더니 대뜸 "걔도 가끔 사!"

하고 퉁명스럽게 한마디 한다.

암!그래야지,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저도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속으로 그러다가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이제 어쩔 수 없는 시어머닛감이 되어가고 있구나1 하는 생각에서였다.

옛날의 나를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남편과 데이트할 때 난 한번도 여자가 돈을 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백수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갑에 돈은 들어 있었다.

 

결혼 후 수개월이 지났을 때 남편이 어느날 불쑥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여자는 데이트할 때 껌 한통 사는 법이 없냐?" 하면서, "들고 있던 그 빽에는 돈이나 들어 있었어?"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좀 놀랐다.

여자가 돈을 내어야 했나?

껌 한통 사는 법 없었다는 말은 곧 차비나 음식값 한 번 낸 적 없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에 놀라기도 하고 왜 한번 내가 낸다는 말 한번 안했을까 싶기도 했고 남자가 참 째째하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그시절에야 근사한 데 가서 칼질 한번 한 적 없고 찌개 백반 아니면 설렁탕 짜장면에 다방에서 마신 옛날식 커피가 고작이었는데 얼마나 알뜰하고 저렴한 데이트였는데 껌 한통 안샀다고 퇴박이란 말인가 싶어 은근히 화도 났다.

 

지금은 비싼 음식점이 많다.

<아웃백>이니 <베니건스>니 이름도 외울 수 없이 많은 데다 찻집도 커피 한잔 값이 알뜰주부들이 먹는 한끼 식사와 맞먹는다. 아들은 그렇게 호사로운 데이트, 어쩌면 요즘 젊은이들의 보편화된 데이트 풍속도이기도 하겠지만 어쨋건 풍풍 돈을 잘도 쓰는데  그시절 그 데이트에 쓴 돈이 몇푼이나 된다고.....

쳇! 안사돈끼리  처음으로 만나 인사할 적에도 설렁탕을 먹었구만.....

 

그래도 지나놓고 생각하니 참 그때 내가 어리숙하기 짝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껌도 사고, 과일이나 군것질거리라도 좀 장만하여 데이트 하러 갈 것이지 멀리 화성군에 있는 유원지에 갈 적에도 창경원, 덕수궁에 갈 적에도 입맛 다실 것 한가지 안가지고 빽만 달랑달랑 흔들고 갔으니 그 빽에 돈은 들어있었냐는 소리를 듣지...

나라는 여자도 생각해보니 무지하게도 답답하고 꽉막힌 여자였다는 생각이다.

그에 비하면 요즘 처녀아이들 그래도 그렇게 답답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아무리 "내자식을 어떻게 키웠는데" 라고 공치사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

나 역시 모시 짜서 자식 공부시켰다는 시어머님 말씀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아들 공부시키느라 허리끈 졸라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라는 공치사같은 건 이제 며느리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어제는 가평에 있는 수목원으로 해서 남이섬으로 나들이를 갔는데, 아들이 누나, 엄마, 회비 우선 3만원씩 내라고 한다. 셋이서 9만원 가지고 기름값, 음식값, 입장료를 한다고 하길래 내가 다 내겠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한다. 먼저번에 제주도에 갔을 때도 경비를 반반씩 내었는데, 백수가 되더니 이젠 어쩔 수 없이 절약을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희떠운 녀석이 회비같은 건 내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을텐데 미국가는 경비는 건들지 않으려는 듯 악착같이 더치페이다. ㅎㅎㅎ

그래도 기름 4만원어치 넣고 걷은 돈이 바닥났다고 하길래 저녁은 내가 샀다.

불고기백반 두 개에 막국수 한접시 해서 삼만이천원을 내가 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가  자동차 값 천육백만원을 보태주었는데 아들이 결혼하면 이 차도 그때는 며느리 것이 되겠구나! 하고 잠깐 생각했다.

그때는 할 수 없이 우리 부부도 차 한대를 살 수 밖에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속으로 며느리  복(福)은 며느리 것이고 내  복(福)은 내 것이니, 사람마다 제 복(福)대로 사는거지 뭐! 하면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