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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 10.3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31 조회수359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0.31 연중 제31주일

지혜11,22-12,2 2테살1,11-2,2 루카19,1-10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자 하느님 찬미의 계절입니다.

단풍 짙어가는 산과 들도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주일 아침부터 하느님 찬미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땅아, 주님을 찬미하라. 산과 언덕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해야 달아 주님을 찬미하라.

  반짝이는 별들아, 너희 모두 주님을 찬미하라.”

 

주변의 하늘과 땅 모두가 가슴을 활짝 열고 주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밤 새 깨어 반짝이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겠으며,

하느님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께는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주님은 모두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이런 하느님이 계시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이렇게 살아있다는 자체가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요,

하느님 찬미는 너무나 당연한 우리의 응답이자 의무입니다.

하여 방금 우리는 화답송 후렴을 힘차게 노래하며 주님을 찬미했습니다.

 

“내 하느님 임금님 기리오리다. 영원토록 당신 이름 기리오리다.

  날이면 날마다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 이름 영원토록 찬양하리다.”

 

찬미의 기쁨보다 우리 영혼에 활력을 주는 것도 없습니다.

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찬미의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영혼들,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하느님을 찾는 찬미의 사람들은 열정과 개방의 사람들입니다.

영성생활에서 두 중요한 요소가 하느님을 찾는 열정과 개방성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의 표현이 개방성이요

이 열정의 사람들은

오관을 활짝 열어 깨어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을 찬미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자캐오가 그 모범입니다.

자캐오는 분명 주님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아무에게나 오시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오십니다.

다음 복음의 그림 같은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 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주님을 찾을 때 운명의 극복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운명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부정적 요소를 온통 주님을 찾는 열정에 합류시킬 때

부정적 요소의 긍정적 승화와 더불어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합니다.

자캐오는 결코 비관론적 숙명론자나 운명론자가 아니었습니다.

물질적 부요가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돈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사람대접도 받아야 삽니다.

빵이나 돈보다 더 시급한 게 사람대접입니다.

무시와 멸시, 차별만큼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없습니다.

세관장으로 동족에게 죄인 취급 받으며

사람대접 못 받으며 살았던 자캐오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의 자포자기보다 큰 죄는 없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멸시의 대상인 세관장에 키까지 작았으니

심리적 열등감은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캐오 이런 부정적 요소에 무너지지 않고

이 모두를 하느님 찾는 열정에 합류시켜 열렬히 주님을 찾았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눈이 열린 자캐오 앞에 놓여있는 돌 무화과 나무였고

이 나무에 올라간 자캐오의 집념과 끈기가 놀랍고 눈물겹습니다.

주님을 감동시킬 만합니다.

아마 자캐오가 세관장도 아니고 키 크고 인물 좋았다면

주님을 그렇게 찾지도 않았을 것이니

역설적으로 세관장이란 직업과 키 작은 외모가

축복의 통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을 찾아오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당신을 끊임없이 찾는 영혼들을 찾아오시는 참 좋으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당신 힘으로 완성해 주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일방적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지 않아 눈과 귀가 닫혀있으면

하느님 찾아오시지도 않고 설상 찾아오신대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여 성소의 표지도 하느님을 찾는 열정의 유무에 둡니다.

주님을 목마르게 찾던 자캐오를 찾아오신 주님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

 

주님께서 ‘자캐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이게 바로 구원체험입니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당신을 찾는 가난한 영혼들을,

진심으로 당신을 환대하는 영혼들을 찾아오시는 자비하신 주님이십니다.

열정의 사람, 개방의 사람, 환대의 사람인 자캐오입니다.

문득 생각나는 환대의 영성이요, 분도 규칙의 말씀입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

 

자캐오가 주님을 맞아들이듯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주님처럼 맞이하라는 어마어마한 말씀입니다.

이보다 심오한 영성은 없습니다.

사람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이요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은 그대로 주님으로 알아 맞아들일 때

놀라운 축복입니다.

어제 읽은 방문객이란 정 현종 시인의 시를 소개합니다.

이 시를 소개한 분은 어마어마한 시라고 극찬했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바로 손님을 맞아들임은 주님을 맞아들이는 것이기에,

그 사람의 인생 전부를,

온 세상을 맞아들이는 것이기에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일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죄인인 우리가 주님을 맞아들이는 환대는 또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요.

 

 

우리가 환대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때

회개와 치유의 구원이요 업그레이드되어 주님을 닮습니다.

 

냉대의 경험도 결코 잊지 못하지만

환대의 구원 체험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내적 상처의 치유와 구원에 환대를 통한

주님과의 만남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주님을 환대하면서 동시에 주님의 환대를 받은 자캐오는

감격에 넘쳐 회개하고 구체적 실행계획을 약속합니다.

사랑의 환대가 저절로 자캐오를 회개로 이끌었고

금고의 문을 열게 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역시 자캐오의 환대와 회개에 감격하신 주님의 지체 없는 구원선언입니다.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미사에 참석하여 회개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구원하러 왔다.”

 

잃은 이들을 찾음이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하느님 앞에는 온 세상도 천칭의 조그마한 추 같고

이른 아침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그들의 죄를 보아 넘겨주십니다.

환대하시며 회개할 때까지 죄를 보아 넘겨주시며 기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의 모습이 자캐오의 회개를 통해 잘 들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자캐오는 진정 믿는 이들의 모범입니다.

 

하느님을 찾으십시오.

항구히 하느님을 찾을 때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미사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주님을 환대하고 주님의 환대를 체험하십시오.

또 만나는 모든 이들을 주님처럼 맞이하여 환대하십시오.

환대를 통한 주님과의 만남이

바로 기쁨과 평화요 치유와 축복의 구원입니다.

이런 주님의 환대를 체험한 이들은

결코 세상 풍설에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자캐오처럼 회개하여 당신을 기쁘게 맞이하는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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