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0 조회수901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6년 7월 20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Come to me, all you who labor and are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meek and humble of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selves.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light.”
(Mt 11.28~30)

                

 

 

제1독서 이사야 26,7-9.12.16-19

 

복음 마태오 11,28-30

 

어제는 동창 신부 모임이 있었습니다. 원래 정기모임은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인데, 어제는 긴급 모임을 하게 되었지요. 왜냐하면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신부가 병원 문제로 인해서 잠시 들어왔거든요. 따라서 시간 되는 사람들 모이자고 해서 어제 급하게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는 2명의 신부를 제외한 나머지 9명의 신부가 하나도 빠짐없이 모인 것입니다. 중국에서 공부하느라 힘든 동창을 만나기 위해서 자신의 바쁜 일들을 모두 뒤로 한 채 나온 것이지요. 저 역시 비록 밤에 모이는 것이 무척 부담되지만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약속 장소로 갔고, 12시 넘어서야 간신히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피곤했습니다. ‘이제 잠시 뒤면, 곧 일어날 시간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몸의 피곤함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너무나도 좋네요. 왜 그럴까요? 바로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동창들과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그 여운이 아직까지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친구와 함께 간다는 것. 이것만큼 행복한 길이 있을까요? 그래서 비록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상황이 놓일지라도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위해서 어떻게든 노력하려고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문득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차별하실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만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조금 여유 있고 편한 짐을 진 사람은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는 안 될까요? 그러나 저의 경우, 즉 동창신부들과의 모임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주님의 그 행동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네요.

바로 당신께서 먼저 이렇게 힘든 삶을 안고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과 처음부터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더욱 더 당신께 가깝게 느꼈던 것이지요. 마치 신학교 때부터 함께했던 동창 신부가 그 누구보다도 편하고 가까운 사람으로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어렵고 힘들 때 당신 앞에 겸손하게 나오기를, 그래서 주님 앞에서 참된 위로를 얻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엉뚱한 곳에서 그 위로를 얻으려 합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서만 위로를 찾으려하기 때문에 더욱 더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렵고 힘들수록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살 길입니다.


 

그리운 학교 동창과 전화 통화라도 하세요.



 
버려진 마법의 돌('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중에서)


 

어떤 가난한 사람이 마법의 돌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마법의 돌은 여타의 금속을 순수한 금으로 변화시킬수 있는 조그마한 수정이며 기록에는 그 조그만 돌이 흑해의 해변에 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돌은 아주 비슷하게 보이는 수많은 자갈 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 돌을 구별하는 유일한 방법은 온도인데, 이 돌이 보통의 자갈보다 따스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몇가지 짐을 꾸려 무작정 흑해로 떠났습니다. 흑해의 바닷가에 이르러 텐트를 치고 자갈들을 하나하나 조사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갈을 집어들어 그것이 차가우면 던져버리기로 하고, 차례차례 집어서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온종일 수많은 자갈을 집어 던지는데 시간을 보냈지만 그가 집어든 자갈 중에 마법의 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 일 년, 삼 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그는 마법의 돌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드디어 그는 하나의 따뜻한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뿔싸, 그 돌을 집어 들자마자 그는 그것을 습관적으로 바닷물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돌은 바닷물속에 던지는 '습관'이 그의 몸에 배어 버린 탓이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것을 얻었음에도 불구 하고 그는 오랜 습관으로 인해 그것을 자기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놀라운 능력을 여러번 접하면서도 그 능력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놀라운 기회가 바로 자기손에 쥐어져 있거나 코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던져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한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뚜렷한 비젼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젼이 없을때 우리들은 자신의 창의성과 상상력, 육체적인 에너지, 집중력과 결단력이라는 '마법의 돌'을 습관적으로 바다에 던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Moonlight Serenade (달빛에 사랑 실어..)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