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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 (11) / 네가 당해봐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9 조회수777 추천수6 반대(0) 신고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 (11)

 

고통의 본질, 절실한 것이 고통의 본질이라고 하는데요, 지금 이 자리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 앉아 계시다면 어쩌면 제 말이 개소리처럼 들릴겁니다. 왜냐하면 고통이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고통받는 사람 앞에서 너무 말이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너무 쉽데 말을 한다는 겁니다. "하느님 뜻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아니면 "인간은 고통을 당할때, 하느님을 더 잘 알고 하느님과 더 가까워 집니다." 고통의 희생물이 돼서 분노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이런 말을 하게 될 때, 상대방은 속으로 온갖 욕을 다 할겁니다.

 

 "네가 당해봐라." 그리고 상대방은 분명히 하느님에 대해서 "얼마나 무자비하고, 비 이성적이고 돌볼줄 모르는 하느님인가?" 생각하게 될 겁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 뜻" 이란 말을 너무 쉽게 아스피린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의 이웃이 겪고 있는 비극적인 사건 앞에서 "하느님 뜻입니다" 라는 종교적인 처방을 쉽게 내리는 것이지요.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 들이라는 권고, 또 대속적인 고통으로서 좀 받아들이라는 권고가 신앙인들이 가져야 될 올바른 태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조금전까지 다섯 개의 고통관을 이야기 했지만, 그 어떤 것에도 제가 무게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섯 개 전부 다 어느 정도 분노하는 마음으로 제가 여러분들 앞에 전달을 했습니다.

 

 "왜?" 고통자체는 설명으로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절실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하느님 뜻으로서 고통을 결론 짓는다면 실제에 대해서 우리가 쳐다보지 않게 됩니다.

 

고통이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쳐다 보아야 될 또 하나의 숙제가 있는데 이런것들을 쳐다보지 못하게 됩니다. 고통받는 분 앞에서 가장 좋은 대답은 침묵으로서 위로해 주고, 같이 있는 것입니다.

 

저도 여기 힘겨운 마음으로 고통에 대한 강의가 있기 때문에 오신 분들이 있다면 제가 가장 좋은 것은 그분 앞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가만히 4시간을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개소리이지만 그분앞에서는 개소리이지만 개소리를 계속 하는 겁니다.

 

 

                              <송봉모 신부님의 강의 테잎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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