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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의 선하신 뜻'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8 조회수609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것을 감추시고>(마태 11,25-30)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로운 자들과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기도 내용을 보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들과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

 

보통 우리들은 "지혜로운 자들과 슬기로운 자들"에게 더 잘 드러내 보여주고 반대로 철부지들에게는 감추려고 한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자들과 슬기로운 자들은 하나를 가르쳐 주어도 금방 알아들을 뿐 아니라 열 개를 알아들으니까 휠신 일하기가 좋고 능률도 많이 올라서 좋다. 반대로 철부지들은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일해놓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지혜로운 자들과 슬기로운 자들을 선호하게 되고 철부지들은 기피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와는 정 반대로 지혜로운 자들과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우리들 입장에서는 이상할 수 밖에 없다.

 

왜 그러셨을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그냥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이다. 예수님의 사명은 이 땅에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다. 그것은 어떤 위대한 기적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 즉 복음선포를 통해서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계획은 생각만큼 쉽게 이루워지지 않았다.

 

오늘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결코 당신의 복음선포가 당신 뜻대로 이루워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예수님 편에서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적도 행하셨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셨지만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제 복음에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11, 20)라고 하였고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베싸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띠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또 이어서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까지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아무리 복음을 전하여도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로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가? 예수님의 체험에 의하면 그 사람들이 소위 "지혜로운 자들과 슬기로운 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때가 차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라고 선포하셨고 그 이후 계속해서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시면서 또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을 만나시면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다양하였다.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열두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 체 예수님을 따르는 부류이다. 이들은 제자들이었지만 때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불평하고 다른 행동을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많은 꾸중을 들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 가면서 배워서 마침내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


다른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무식하고 소외당한 이들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받아들이고 따른 세리와 고아들 과부들, 가난한 이들 즉 그 당시 사회에서 가장 버림받고 죄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비록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 당시 가장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는 이들이며 그래서 이들은 다른 사람을 판단 해주고 하느님의 율법을 가르쳐 주는 지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비판하고 거부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무시하였고 비난하였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들의 일관된 자세는 거부와 냉소이었다. 그렇지만 가장 버림받고 무식하고 가진 것이 없는 철부지에 속하는 과부와 가난한 이들, 죄인 취급을 받고 있던 세리와 어린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음을 드러내 보여주는 이들은 바리사이파나 율법학들처럼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철부지들인 가난하고 소외당한 과부와 세리들과 같은 이들이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인 이미 자기들이 하느님의 율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아니 그럴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자기 것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일종의 교만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로서 교만이라는 완고한 마음으로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부지들은 자기 것이라고 고집할 것이 없다. 아직 철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의 어떤 사상이나 주관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얼마든지 받아들일 여유가 있고 사실 배고픈 이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얼마든지 새롭게 인격이 형성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마치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진흙을 빗어 만드시고 그 안에 입김을 불어 넣으셨듯이 철부지 같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에 의해 새롭게 탄생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가장 복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자처하는 교만한 이들이다.  스스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복음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진리에 목말라하는 겸손한이들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신뢰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 자신이 가장 크게 느낀점은 나의 삶을 평가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분은 내가 아닌 다른 분 즉 예수님이시라는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분도 내가 아닌 예수님이시고 나를 지혜롭고 똑똑하다고 평가해주시는 분도 내가 아닌 예수님이시다라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자가 정말 슬기롭고 똑똑한 사람이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잣대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기가 똑똑한척 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한 모습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도 자신이요,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도 자기 자신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악인이나 선인이나 의로운이나 불의한 이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고 햇빛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은 누구는 불행하고 누구는 행복하기를 바래서 선별해놓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모두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에 모두를 사랑하시고 잘 되기를 바라시고 그래서 축복해주신다. 다만 그 축복을 우리가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지혜로운 자들과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자기들의 지식과 능력을 믿기 때문에 또 그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신앙같은 것이나 복음을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웃웁게 보고 믿지 않겠지만 철부지 어린이와 같이 순수하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잘 안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드러내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모든지 축복도 받는 사람이 더 받는 것이고 받지 않는 사람은 굴러 들어온 축복도 발로 걷어 차버리기 때문에 아무런 축복을 받지 못한다.

 

우리가 정말로 행복해지려면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 앞에 철부지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 가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철부지 어린이가 아빠에게 때를 쓰듯이 잘 못알아듣는 것이 있으면 알게 해달라고 떼를 써야 한다. 그러면 드러내 보여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소수의 철부지 어린이와 같은 사람 때문에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실 수 있고 기쁨과 보람을 맛보실 수 있으신 것이다. 당신의 말씀을 철부지 어린이와 같이 믿고 받아들이는 그 소수의 사람이 바로 오늘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하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되도록 하자. 그래야 하느님의 말씀이 또 오늘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예수님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무거운 짐을 자기 혼자 짊어지고 가려고 하지 말고 즉 자기의 지혜와 능력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에게 가서 어떻게 짐을 지어야 하는지 배우도록 하자.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만이 예수님에게 가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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