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상상력 발동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8 조회수698 추천수8 반대(0) 신고

독서: 이사 7,1-9 복음: 마태 11,20-24 우찌야의 손자이며 요탐의 아들인 유다 임금 아하즈. 르말야의 아들인 이스라엘 임금 페카. 당시 역사 상황도 골 아픈 일인데 사람의 이름도 참 복잡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냥 아하즈, 페카라고 말하면 간단할 것을 아버지에 할아버지까지 거명하기 때문이다. 족보를 중시하는 사조 때문만은 아닐 듯하다. 이사야가 아하즈에게 예언을 할 때에도 아들 스아르 야숩을 데리고 나가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들과 아버지와 할아버지. 나 하나의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선행을 하든, 무슨 악행을 하든 공동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 (상상력 발동 1)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의 침공을 막기 위해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손을 잡았다. 이들은 유다와도 동맹을 맺기를 원했으나 유다의 아하즈는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격분한 아람과 북이스라엘(=에프라임)은 먼저 유다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유다를 꺾고, 타브알의 아들(그가 누군지?)을 유다의 임금으로 세우려했다.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다윗 왕실에 전해지자, 임금과 유다 백성들 모두는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 듯 마음이 떨렸다’. (사시나무 떨 듯? ^^) 이사야는 그런 아하즈를 데리고 자기 아들과 함께 ‘마전장이 밭’에 이르는 윗 저수지 수로 끝으로 나갔다. 왜 하필 그곳을 골라 갔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상상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고대 사람들이 염색을 하는 곳은 대부분 강가나 저수지의 수로 옆. 그런 곳에 장작불을 펴고 커다란 솥에 염료와 천을 함께 넣고 끓이다가 흐르는 물에 몇 번씩 헹구고 삶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곳 저수지 수로 끝, 마전장이의 밭에서는 늘 지글지글 타고 있는 장작 더미가 있었을 것이다. 타다 남은 식은 장작더미를 가리키며 이사야는 아람과 에프라임의 연합군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은 ‘타다 남아 연기만 잔뜩 내는 장작 끄트머리’에 불과하다! 임금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진정하라! 는 메시지를 눈에 보이는 시청각적인 자료를 활용해 선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상상력 발동 2) 아무튼, 이사야의 예언대로 BC 722년 아시리아에 의해 에프라임은 무너져 민족으로 남아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무너진 이유를 재미있는 표현을 사용해서 또 묘사하고 있다. “아람의 우두머리는 다마스쿠스요 다마스쿠스의 우두머리는 르친이기 때문이다." “에프라임의 우두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우두머리는 르말야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게 무슨 이유인가?) 그들이 무너지고, 남아있지 못하게 될 것이라 하신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또 이 문장을 하나씩 풀어본다. 나라 이름: 아람(=시리아)과 에프라임(=북 이스라엘) 도시 이름: 다마스쿠스와 사마리아 임금 이름: 르친과 페카(=르말야의 아들) 나라의 우두머리가 도시고 도시의 우두머리가 임금이라는 말은 현대인이 생각하기에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의 왕정제도라는 것은 결국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제도이다. 한 사람의 임금을 위해 온 성읍이, 그리고 임금과 왕족과 귀족층이 사는 수도 성읍을 위해 온 나라가 그에 봉사하는 소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은 아닐까. 한 사람을 위해, 모든 사람이 이용당하고 억눌리고 착취당하고 소외당하는 피라밋 모형의 제도. 결국 이러한 제도는 주,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좋지 않은 모습. 그렇기 때문에 무너뜨려 버리신다는 것은 아닌가. 바로 그러한 구조가 싫어서 당신 백성을 빼내오신 사건이 출애굽의 구원 사건이 아니었던가. (상상력 발동 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코라진과 베싸이다와 가파르나움을 향해 진노하신다. 이 부유하고 번화한 도시들 안에도 아마 피라밋 모형의 제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던 건 아닐까. 자신의 안락과 가문의 번성에만 관심이 있는, 이웃 사람들은 죽어가건 말건 자신의 쾌락에만 마음을 쏟는,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 같은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건 아닐까. 열명의 의인만 있어도 멸망당하지 않았을 바로 그 작은 수의 의인의 연대마저 없었다는 말은 아닐까. 아들과 아버지, 할아버지로 줄줄이 연결하는 공동 책임성! 오늘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도 그러한 소수의 의인들이. 그들이 어제까지 행한 작은 선업들이. 바로 오늘까지 나를 살리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상상력 발동 4)

 

언제까지 남의 힘을 빌어서 살고 있을까?

언제까지 나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을까?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헨델 Harp Concerto No.6 in Bb major, Op.4 1.Andante - All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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