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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620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0 조회수359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6월 20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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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심판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선과 악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구분하는 것이 판단이라면 심판이라고 말하면 그것을 고정화해놓고 분리시켜버린다는 것을 또한 말합니다. 

심판하지 마라는 말씀을 우리는 자주 사용하지만 실제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좋은 심판을 하는가에 따라 세상살이가 좌우된다고들 생각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생각 잘해라'


여기 생각의 끝에는 항상 자신의 삶에 대한 심판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우리의 기준을 가지고 곳곳에서 구분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올바른 것을 고르고 골라, 또 좋은 것만을 고르고 또 골라 성공하는 인생을 산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산다는 것은 그 나머지 버려지는 것들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변화무쌍한 자연보다 더 심한 파도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버려지는 인생들 또한 매 순간 극심한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 또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나쁜 사람이 항상 나쁘지는 않고, 나에게 좋은 사람이 모든 것에 좋은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의 심판하지 마라는 말씀 속에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짓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또한 이 말씀의 근본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심판으로 대하시는가를 생각해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보내셨고, 그 외아들은 심판이 아닌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 주님을 믿는다 말했지만 그 어느 하나도 온전하지 않았던 세상에 주님의 사랑은 어떻게 보면 하느님 백성에게조차 말이 안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옳다고 판단되긴 하지만 나의 삶에 맞춰보면 맞질 않아서 차라리 틀린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어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십자가는 올바른 삶을 산 이에게 내린 어이없는 형벌이었지만, 죄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올바른 삶을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하느님 앞에 부끄럽게 만드는 악이었던 것입니다. 상대적인 선과 악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과 악의 세상을 비뚤게도 만들고 우리 식대로 선한 세상, 그래서 결국 나만이 선이 되어야 하는 세상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심판을 삶에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깁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심판이 잘못되면 결국 모든 것을 뒤집는 결정도 하게 됩니다.  그 심판이 결국 살기 위해 하느님을 죽이는 십자가를 불러왔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의로움이 승리했다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런 심판자들을 위선자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나 이 위선자들은 자신들을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들보를 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잘 닦고 준비하는 것이 우리는 모든 것에 근본이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들보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라는 말씀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끔 우리는 시간을 내어 반성, 회개, 수양, 수련 등등으로 불리는 것으로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들보를 빼내고자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 결국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다시 나온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 어떻게 대하는 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랜 수련이 지나 나만 홀로 더욱 독하게 선하게 되어 모든 것이 악하게 느껴지고 거기에서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삶을 들보를 빼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키웠다는 결과입니다. 다시 돌아온 세상이 싫고 더럽고 부족하다 느껴진다면 그래서 다시 피정을 떠나고 싶다면 그 역시 들보를 빼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위선이 독선이 되고 독선이 삶의 철칙이 되어 버리는 삶. 우리는 매우 견고한 들보를 지닌 세상의 심판자가 될 것입니다. 입으로 사랑을 말하면서 삶을 심판으로 점철된 그래서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결국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해버리는 잘못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랑스럽게 말입니다. 


그 때 사라지지 않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들보를 빼내십시오. 들보는 깨닫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들보는 닦아서 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순간 깨달음으로 버리면 간단히 빼낼 수 있습니다. 밝은 세상은 내 맘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상과 삶을 잘 보고 사랑하면 그 삶은 원래 밝은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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