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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하여라'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6 조회수626 추천수2 반대(0) 신고

<청하여라>(마태 7,7-11)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기도는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느님께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아버지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자녀로서 청하는 자세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무엇을 주시고자 하시는지를 알고 그것을 나도 청하는 것이고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억지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시도록 하느님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이고 하느님이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자세를 갖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내가 청해야 하는 것은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 것을 청하는 것이고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청하고 바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에페3, 20)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선물을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청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는 말은 명령어이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가 18,1)고 말씀하셨듯이 계속해서 청해야한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지 않으면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각자 가지가 청한 것만큰 은혜를 받을 것이다. 청한다는 것은 우리의 원의를 넓힌다는 것이요, 하느님의 원의가 나의 원의가 되게 하는 것이요, 영성생활은 하느님의 원의를 나의 원의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청해야하는 것은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모든 것을 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원의를 막거나 꺼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의 원의가 무한대로 넓어지기를 원하신다.

 

인간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된다. 우리가 하느님을 바라면 우리 자신이 하느님처럼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 청함으로서 받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느님께 청할 것이고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는 것을 주실 것이다.

 

왜 우리는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가?
"청하고 두드리고 찾는다"라는 것은 내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완전한 존재라면 굳이 청할 것도 없고 찾을 것도 없으며 두드릴 것도 없다. 나는 늘 무엇인지 모르지만 부족함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청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존재이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요,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인정하는 이는 절대자이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매일 청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청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고 청하는 것을 얻기 위해 찾지 않을 수 없고 주실 수 있는 분에게 달라고 문을 두드리지 않을 수 없다.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리라"는 것은 하느님이 청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으면 주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즉 우리 자신이 끊임없이 청하고 찾고 두드릴 때 그런 모습으로 발전하고 변화되기 때문이다. 투수는 세계의 최고의 투수가 되기 위해서 매일 땀을 흘리며 투수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고 찾고 두드린다. 그런 노력과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경쟁사회에서 남아있을 수 없고 자기가 바라는 세계최고의 투수가 될 수 없다.

 

누구든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많이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지만이 가능한 것이지 하느님께서 다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청하지도 찾지도 두드리지도 않으면 절대로 자기가 바라는 대로 이루워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청하고 찾고 두드린다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이지 하느님이 주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늘 말씀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말씀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는 말씀 사이에 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청해야하는지 그리고 왜 청해야하는 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느님께 청할 때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청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하느님께 청한다 하더라도 남을 심판하는 그런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고 했던 말씀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청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 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신다. 좋은 것이란 "성령"이시다. 성령이란 우리가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서 서로 화해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마태 18,15참조), 서로 마음이 갈라졌을 때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라는 것이요,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마태18,22)할 수 있는 은혜를 청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닮으려고 할 때 그리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청하고 노력할 때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기도할 때 우리가 가져야할 유일한 자세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나도 할 수 있도록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것을 청해야하고 원해야 한다. 우리가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는다면 아무도 그것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청하고 찾아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청할 때 결코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야고보 사도는 "만일 여러분 중에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하느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아무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후하게 주시는 하느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조금도 의심을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의심을 품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주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의심을 품은 사람은 마음이 헷갈려 행동이 불안정합니다."(야고보 1, 5-8)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우리가 기도를 할 때 간절한 마음으로 신뢰심을 가지고 겸손되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청한다면 얻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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