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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담사에서 오셨습니까?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6 조회수715 추천수6 반대(0) 신고
 

                     

 

                                백담사에서 오셨습니까?



   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강론 준비에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중국집에서 전화가 왔다는 연락이 왔다.

   “중국집에서 전화가 왔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가 올 만한 이유가 없었고 혹시 잘못 걸려온 전화가 아닌가 하여 수화기를 들었더니 상대방이 자기 소개를 하면서 대단히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내용은, 자기가 이번에 대만엘 가면 중국산 대머리 특효약을 구해올 수 있는데 신부님께서 신청해 주셨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내가 대머린 줄 어떻게 알고 중국사람이 전화를 했는지 그것도 재미있었지만, 특별히 신부님께는 30만 원에 드리겠다고 하는 그친절에도 애교가 있었다.


   나는 신학교 입학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대머리였다.

   어렸을 때는 머리숱이 좀 적다고 느꼈는데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난 뒤부터는 뒷머리부터 살살 벗겨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옆 머리칼만 조금 남겨 놓은 채 중앙은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사막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빗질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가르마를 타다 보면 중앙을 덮어 두는 몇 가닥의 머리털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럴 때면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사람들은 가끔 “어찌 한두 가닥으로 대머리를 가릴 수 있느냐?” 면서 놀려대곤 한다.


   한번은 대주교님까지도 “그러면 좀 나은가?” 하시면서 내 머리 중앙에 얹혀 있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보며 웃으시기도 하셨다.

   그러나 모르시는 말씀들이다.


   햇볕이 뜨거운 여름날, 그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중앙을 가로지르면서 드리우는 그늘로서의 서늘함과 아늑함이란 대머리가 아닌자들은 그 깊은 사정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대머리가 아닌 자들이 어찌 그 오묘한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단 말인가!

   솔직한 고백이지만, 내가 대머리라 해서 일찌기 고민을 하거나 또는 머리털을 좀 나게 하기 위해서 어떤 시도를 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나는 생긴 대로가 그냥 좋았으며 머리 감기 편하고 또 이발비가 들지 않으니 편리한 때가 많았다(서품 이후 한번도 이발소에 간 일이 없다!).

   다만, 여름의 뜨거운 햇볕과 겨울의 찬바람은 모자 하나로 다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전 아무개라는 사람이 홍두깨처럼 등장하면서 부터는 나라 안의 모든 대머리들이 수난을 겪어야 했다.

   “대머리를 까부수자” 라는 구호도 있었고 “털빠진 원숭이.....” 어쩌고 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백담사에서 오셨습니까?” 라는 신자들의 너스레를 받기도 했다.

   “신부에게 감정 있으면 술로 풀어!” 하면서 나도 신난다는 듯이 웃고는 있지만, 참 묘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예수님, 머리 벗겨진 것도 죕니까?”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

 

                                                              

 

Romance Anonym - Andre R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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