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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스무 살 어머니 . . . . . . . . [정채봉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7 조회수1,445 추천수13 반대(0) 신고

 

 

 

   회사에 여고를 갖 졸업한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키고 작고 얼굴도 복숭아 처럼 보송송하다.

어쩌다 사원끼리 우스갯소리라도 하면 뺨에 먼저 꽃물이 번진다.

 

한번은 실수한 일이 있어서 나무랐더니

금방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올해 몇 살이지?"

 

그러자 신입사원은 손수건으로 눈밑을 누르며

가만 가만히 대답하였다.

"스무 살이예요."

 

여자 나이 스무 살........,

소녀에서 성인으로 턱걸이 하는 저 나이.

무엇이거나 그저 우습고 부끄럽기만 한 저 시절.

 

나는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키웠다.

우리 어머니가 하늘의 별로 돌아가신 나이가 바로

저 스무살이었던 것이다.

 

열일곱에 시집 와서 열여덟에 나를 낳고

꽃다운 스무 살에 이 세상살이를 마치신 우리 어머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어머니의 내음은 때때로 떠오르곤 한다.

 

바다 바람에 묻어 오는 해송 타는 내음.

 

고향의 그 내음이

어머니의 모습을 아련히 보이게 한 날을 기억한다.

유년시절,

눈발이 히끗히끗 날리던 날이었다.

 

이웃 민주네 할아버지 한테서 '장화 홍련전'을 들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오니 저녁밥 짓는 연기가

골목을 자욱히 덮고 있었다.

먼 바다 쪽으로부터 물새 울음 소리가 들렸다.

 

처음으로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돌을 차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할머니가 군불을 때고 있었다.

부엌 문설주에 기대 서 있는데 해송 타는 연기가

자꾸 나한테로만 몰려들었다.

 

그때 기침을 하면서 눈을 비비며 서 있는 내 앞에

막연히 어머니의 모습이 다가오다가는 사라졌다.

해송 타는 연기와 함께....

 

그 뒤부터는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면

해송 타는 내음이 생각키웠다.

해송 타는 내음을 만날 때면  어머니가 조용히 떠올랐다.

 

 

 

 

 

중학생이 되고 2학기가 시작된 9월 어느 날이었다.

들녘에 나가서 토끼풀을 뜯어가지고 돌아오니

이불 호청을 깁고 있던 할머니가 불렀다.

 

"너 없는 사이에 너그 담임 선생님의 다녀가셨다.

 작문시간에 어머니 냄새라는 제목으로 글을 지었다면서?"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해송 타는 냄새에 내 에미가 떠오르다니......,

 허긴 너의 외가 가는 길이 솔밭길이긴 하다.  솔미재라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꽉 찬 고개를 넘어야 했거든..

 너를 등에 업고 네 에미가 친정을 몇번 다녔으니

 그 솔냄새가 너희 모자한테 은연중에 배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네 에미의 얼굴을 보여 주랴?"

 

할머니는 일어나서 장롱 위에 있는 부담을 끌어내렸다.

그때 처음으로 할머니가 뚜껑을 열어 보여 준 그 부담속에는

여러벌의 여자 옷이 있었다.

 

남치마며  인조 저고리며  단속곳이며,

그리고 색이 바래지 않은 흉배도 있었고 나막신도 있었다.

 

나는 부담의 맨 아래에 한지로 싸여 있는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 속의 어머니는 내게 참으로,

참으로 여리다는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둥근 턱에 솔 순 같은 눈..

바람받이에 있는 해송 같은 낮은 코에 작은 입...

정말 명이 든 데라곤 어디 하나 보이지 않는,

하얀 박속 같은 여인이었다.

 

"네 에미는 너한테서 엄마라는 말  한번 들어 보지 못하고 죽었다."

 

"세 살이었다면서 내가 그렇게 말이 늦었던가요?"

 

"아니지,  네 삼촌들이 형수라고 부르니까 너도 덩달아서

 형수라고 했어.  형수 젖,  형수  물 하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울음보다도 짙은 회한의 것이었다!

 

그때 문득 내 앞에 환상의 지구역이 떠올랐다.

순간마다 무수한 사람들이 떠나가고..

대신 어린 아기들이 내려오는 곳.

 

떠나는 늙은 분들 틈에 끼어 앉았을 스무 살의 우리 어머니.........,

쪽진 머리를 보고

혹시...  남겨 놓고 가는 아이가 없느냐고 물어서

울린 사람은 없었을까?

 

서른 한 살때 나는 아이 하나를 얻었다.

아이는 우리가 낯선 듯 처음엔 울고 보채기만 하더니

예닐곱 달이 되면서부터는 이쁜짓을 하기 시작했다.

 

우스운 일 하나 없는데도 괜히 저 혼자 방글거리곤 했다.

나는 그러는 아이가 귀여워서 입을 맞추다 말고..

해송 타는 내음을 느꼈다.

 

언젠가 고모의 말이 환청처럼 살아났다.

 

"네 에미처럼 무심한 여자도 드물 것이다.

 네가 배가 고파서 울어도 좀체 젖 줄 생각을 안하는 거야.

 보다 못해 우리가 채촉을 해야 그때서야 일 손을 놓고가서

 젖 한 모금 찔끔 주고는 금방 돌아오곤 했단다."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스무 살의 우리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짚었다.

아이 우는 소리에 타지 않을 어머니의 속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달려오고 싶은 마음보다도 시누이들한테 눈치 보일까 봐

얼른 자리를 뜨지 못했을 우리 어머니.

 

아무리 울보라고 소문난 나 였대도

때로는 어머니 품에서 웃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볼까 봐 내 어린 뺨에 볼 한번 부비는 것도

우리 어머니는 참 어려웠으리라.

 

오늘도 하얀 박속 같는 스무 살의 우리 어머니는

그 앳됨 그대로를 지니고 사진틀 속에서

당신보다 더 늙어가는 아들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계신다.

 

풋콩에서와 같은 비린내 나는 부름이 들릴 듯도 한데.............,

 

그러나 이제는 해송 타는 내음마저도 점점 엷어져 가는 것 같아

 

나는 참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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