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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머리 학사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5 조회수750 추천수7 반대(0) 신고
            

                          

 

                                             머리 학사님


   본당 꼬마들은 나를 “대머리 학사님”이라고 부른다. 생긴대로 불러 주는 것이기에 그들도 즐겁고 나도 기쁘다. 그러나 그들이 뭔가 마음이 틀어진 상황에서는 ‘대’자를 빼고, 그냥 “머리 학사님”이라고 부른다.


   지난 방학 때의 일이다. 미사 중에 웬지 떠들고 야단이기에 앞에 가서 눈을 한 번 부라리고 뒤로 돌아섰더니 “대머리”하고 놀려대는 것이었다. ‘어디보자’ 하는 판이었는데 여전히 쑤근쑤근, 킬킬 야단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뒤로 꼴밤을 한 방씩 멕여 줬더니 이 친구들이 나를 흘겨보며 “머리 학사님!” 하고 약을 올리는 것이었다.


   미사 후에 그놈들을 불러 일장훈시를 했다. “머리 학사님이라니, 이게 어디 보통 머리냐?” 하면서 우리나라 대통령도 대머리고 사장도 대머리가 많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뭔가 훌륭하고 지체있는 사람은 머리가 벗겨지게 되어 있다고 한마디 연설을 했더니, 늘 잘 나서는 꼬마가 가소롭다는 듯이 위아래를 훑어보더니만 “우리 동네 엿장사도 대머리요!” 하면서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 어린이들을 좋아한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들이 좋으며, 뭔가 서툴고 미약해서 잘못이 많지만 쉽게 고치면서 무럭무럭 성장하는 그들의 단순함이 좋다. 예수님께서도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18,3)라 고 말씀하셨다. 어린이의 깨끗하고 티없는 마음은 그 자체가 하늘나라로 보여지기도 한다.


   개학 후 며칠 뒤의 일이다. “형님, 아가씨한테서 편지 왔어요!”하면서 신학생들이 호들갑을 떨기에 받아 봤더니 꼬마들이 보낸 것이었다. 거기에는 “보고 싶다”는 말로 시작해서 몇마디 칭찬의 말을 늘어놓더니만 나중에 가서는, “학사님은 성질이 급하시고 화를 잘 내신다”는 등의 충고도 잊지 않았다.


   “고놈들!” 하면서 너무도 귀여워 소리내어 웃었지만 난 사실 그들의 충고를 백 번이고 받아야 한다. 언젠가 성가대 아가씨가 “학사님!” 하면서 내 팔장을 낀 일이 있었다. 늙은 신학생이라 부담없이 한 일인데, 이를 보고 있던 꼬마가 날 손가락으로 부르더니 “여자 조심하세요” 하면서 눈짖을 하는 것이었다.


   난 교직에 있응 때부터 어린이들을 좋아했다. 일요일에도 거의 학교에 나갔으며 방학이면  아이들이 보고 싶어 몸부림을 쳤다. 그래서 나는 언제고 엿장사 한 번 해보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 엿장사들이 가위질을 짤깍짤깍하고 다니면 아이들이 주르르 몰려다니곤 했는데 난 그것이 참 좋았다.


   신부가 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아이들과 항상 함께 있을것을 생각하면 신이 나는 일이다. 어른들은 사실 골치 아플 때가 많다. 그들은 아이들이 사고낸다고 하지만 실제론 다 어른 들이 사고내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신학교 방학을 기다리면서 어린이들을 머리에 그려본다. 생각하면 그렇다. 난 그들의 스승이고 그들은 또 나의 작은 스승들이다.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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