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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 뭐 있어?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6 조회수1,080 추천수21 반대(0) 신고
7월 16일 연중 제15주일-마르코 6장 7-13절


“길을 떠날 때에...”



<인생 뭐 있어?>


피 말리는 경쟁사회에 대해 지독한 혐오감을 느끼던 선배, 지치고 지친 고달픈 심신을 다독거리며, 직장에 사표를 낼 때, 저도 엄청 말렸습니다.


그간 쌓아올렸던 도시생활의 탑을 훌훌 허물어버리고 첩첩산중 깊은 산골로 들어갈 때, 다들 그랬습니다. 선배 체질상 분명 두 달도 못 넘기고 도로 뛰쳐나올 것이다. 두 달 넘기면 내 손에 장을 지질 것이다, 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선배, 의외로 꽤 버티더군요.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고, 일년이 가고, 삼년이 가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너무나 궁금했던 우리가 첩첩산중을 찾아갔을 때, 저희는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히 자존심강한 사람이다 보니 엄청 나오고 싶었을 텐데, 한번 결심한 것도 있고, 창피해서 버티고 있을 것이다. 거의 초죽음 상태로 견디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위로하러, 빨리 데리고 나오려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의외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선배의 얼굴이 그렇게 편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인심 좋고 넉넉한 시골 아저씨로 변해있었습니다. 속임수겠지, 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형수도 아이들도 얼굴이 좀 새까맣다뿐이지 포동포동 살이 오른 건강한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처음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가 정말 두려웠다. 도시 생활을 떠나올 때, 고정적인 수입원도 없는데, 혹시라도 굶어죽는 것은 아닌지, 큰 일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많았지. 엄청 고민이 많았었는데, 웬걸, 아무 일도 없더라구.”


그러면서 마무리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생 뭐 있어? 이렇게 물에 밥 말고, 풋 고추 따고, 이렇게 사는 거야!”


저도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 물품목록 기호 1번이었던 개인 노트북, 없어지면 큰 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웬 걸 공부 끝나고 돌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주고 나니 마음이 얼마나 편해졌는지요? 가는 공동체마다 마음껏 컴퓨터 쓸 수 있는 방이 잘 마련되어 있더군요.


디카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나니, 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습니다. 굳이 찍고, 저장하고, 인화하고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다들 프로가 되어 별 문제가 없더군요.


무거운 고급 시계 마찬가지입니다. 늘 부담스러웠는데, 한 아이에게 주고 나니 훨씬 손목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자리 욕심 버리고 나니 세상 곳곳에 멋진 자리가 생기더군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떠나는 제자들을 향해 한 가지 당부말씀을 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한평생,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으시고 오로지 수도자로서 삶에 충실하셨던 선배님들, 그분들이 오랜 풍랑과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셨던 이유, 한결같이 든든한 바위 같던 이유, 그리고 영예롭게도 수도자 신분을 간직한 채 삶을 잘 마무리한 배경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주님 말씀 따라 한평생 청빈지도를 생명처럼 지켜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외에 비본질적이고 부차적 요소들로부터 끊임없이 이탈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은총의 저녁, 우리 역시 가난하고 겸손한 빈손으로 우리 주님께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우리의 영혼을 주님께서는 기쁘게 당신 나라에 받아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없이 살아도, 가진 것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고,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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