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새벽 두 시의 은혜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6 조회수774 추천수9 반대(0) 신고

             

 

 

                            새벽 두 시의 은혜



   지금 시각은 정확히 새벽 2시 10분이다. 벌써 언제부터 새벽 2시에 잠을 깨는 버릇을 가졌는지 모른다. 분명히 밤 1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을 텐데 서너 시간이 못 되어서 마치 다 자고난 것처럼 눈이 떠지는 것이다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난 종종 새벽에 일찍 눈을 뜨는 습성이 있다.


   첫 번째 기억은 나이 서른넷에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도무지 내가 신학생이라는 사실이 잘 믿기질 않는 감격도 컸지만 어서 일어나서 기도 하고, 공부하고 싶은 열망에 더 이상 자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크신 축복이었다.


   두 번째는 ‘노안’ 이라는 시골 본당에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몸은 서품 전 부터 시작해서 내리 3년을 아펏는데 내가 신부가 되었다는 기쁨과 무엇인가 열심히 해야겠다는 열정 때문에 길게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병은 더 길게 나를 물고 늘어졌지만 모든 것이 그저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세 번째는 호남동에서 첫 단식을 하고 났을 때의 일이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단식을 하고나니 몸과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기도도 맛이 있고 사는 것도 재미있어서 바라보이는 세상이 온통 장미요 축복으로만 여겨졌다. 단식을 모르고서야 어찌 인생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랴 할 정도로 그때는 내가 다시 태어나는 기분 이었다.


   네 번째는 내가 진행성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을 알고 술을 끊었을 때의 일이다. 자주 보던 고백성사였는데 우연히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술에 대한 말씀을 듣고는 내가 바로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그것은 부끄럼보다 기쁨이요 축복이었다. ‘이젠 죽어도 좋다“는 말을 자주 했으니 내가 왜 그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했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


   좌우간,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정말 신이 나는 일이다. 다른 사람 다 잠들었을 때에 나 혼자만 깨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주님이 나와 단 둘이만 있고 싶어하신다는 착각 때문에 더 감미로운 것이다. 사실 주님은 늘 그 시간에 나와 함께 계셨다.


   함평에 온 지 여러 날이 되었다. 성당 자체가 외진 언덕에 있어서 조용한 데다가 공기가 좋아서 서너 시간만 자도 몸은 개운하고 가볍기만 하다. 도시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크락숀 소리와 술주정 소리에 잠을 설치던 것에 비하면 이 얼마나 큰 하느님의 은혜인가 싶어 공소가 10개나 되어도 지칠 줄 모르고 달리고 또 달리곤 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만 거는 기대와 꿈이 있으시다는 것을 나는 자주 묵상한다. 각 사람에게 하느님은 그렇게 소망을 두고 계시지만, 내 편에서 보면 유독 나에게만 더 각별하고 너그러우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몰래 “난 하느님이 좋아요” 하고 속삭이면 어느새 하느님도 “ 나도 네가 좋다” 하며 기뻐하시는 것 같다.

   새벽 2시에 잠을 깬다는 것은 은헤로운 일이다. 그렇다고 그 때 아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한숨을 더 잘 수 있기 때문에 고마운 일이다.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 본당 주임)

 

 

Girl

paul mauriat

 

첨부이미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