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오늘복음묵상] 무얼 그리 재십니까? / 최용혁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6 조회수741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6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일 (농민주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마르코 6,7)

 

 Jesus summoned the Twelve

and began to send them out two by two
and gave them authority over unclean spirits.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악령에 대한 권한을 주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파견하십니다

 

☆☆☆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합니다. 연인으로, 친구로, 또는 아내나 남편으로 자기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합니다. 주님의 선택은 자유롭습니다. 주님께서는 장점이나 탁월함 때문에 선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그분의 자유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선택하신 그 모든 이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들어갈 학교를 선택하고, 우리가 배우고 싶은 교수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를 제자로, 사제로, 수도자로, 교사로, 선교사로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하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어떤 직분이나 처지에 있든지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당부하십니다. 아니, ‘지금 여기’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바라십니다. “아버지의 나라와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무얼 그리 재십니까?


   신학생 시절, 복지시설에 봉사를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버려진 아기들을 맡아서 돌보다가 입양시키는 기관이었는데 처음 봉사를 나가던 날 엄청나게 긴장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혹시나 잘못해서 아기를 떨어뜨리면 어떡하지? 기저귀 채우는 법도 모르는데 아기를 제대로 돌볼 수나 있을까? 아기가 자꾸 보채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온갖 걱정이 머리 속을 어지럽혔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처음 봉사 나간 저에게 주어진 임무는 아기를 보는 일이 아니라 방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방바닥을 걸레질하면서 다른 봉사자가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잠을 재우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봉사 나갔을 때에는 어깨 너머로 배운 걸 그대로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첫 아기를 가진 엄마가 아기를 낳자마자 완벽한 엄마일 수는 없습니다. 밤에 징징대는 아기와 씨름을 하고, 목욕시키는 법을 몰라 허둥대면서 서서히 엄마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처음 교편을 잡은 선생님이 첫 수업부터 완벽한 교사일 수는 없습니다. 학생들과 여러 가지 일들을 헤쳐나가면서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인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십니다. 그러면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심지어 돈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떠나라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은 주님이 채워주신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자들은 준비 없이 떠났고 훌륭히 복음 선포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가끔 신자들을 보면 봉사라는 단어에 기겁을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시작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과연 그분 생각대로 때가 되려면, 준비를 다 갖추려면 언제여야 할까요?

   며칠 전 의정부교구에서 처음으로 사제가 되신 새 신부님들을 바라보며 몇 년 전에 있었던 제 자신의 서품식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때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이제 신부가 되었으니 다 이룬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발령받은 본당에서부터 제 자신의 미흡함을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그때 돌아가신 원로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제는 수단을 입고 관에 들어가야 비로소 사제인 거야.” 평생을 살면서 사제가 ‘되어가는’ 것인데 벌써 ‘되었다’고 생각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지요. 하지만 좌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나와 함께 걸으시며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시는 주님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시간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고, 믿음도 미약하고, 봉사하라는 말에 눈치만 보고, 잘 사랑하지 못하고, 잘 용서하지도 못하는 그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로 더 채우려 해 봤자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냥 시작합시다. 우리가 시작하면 이미 반은 간 것이니, 나머지 반은 주님이 함께 가주실 것입니다.

-  최용혁 베드로 신부 (의정부 교구 주엽동성당 부주임)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