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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기 목숨과 같은 사람의 일 [버리는게 쉽지 않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16 조회수359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마르코 8,27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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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의 머리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께서 사람을 해석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을 해석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머리로 해석한다면 하느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머리가 그 우위에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교만한 마음은 말씀을 자신의 머리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못합니다.

'말씀께서 사람(삶)을 해석해 주신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 머리 보다 자기 체험에 의해서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능동성이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수동성을 의미한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교만한 마음은 은총마저도 부정한다고 하겠습니다.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그리고 또한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며 말씀하셨슴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반대자는 진리(말씀 안의 영; 요한 6,63)를 거부하고 가짜 마리아의 거짓된 풀이(메세지)에만 집착하게 되어 집니다.

예수님께서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하시며 당신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미리 예고해 주셨습니다.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에게 그 불행스런 말씀은 차마 싫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세상의 안락함을 훗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에서 '초막 셋을 지어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하는 부분은 세상의 안락함과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베드로의 속내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고 기록합니다.베드로의 속내와는 달리 하느님의 일이 명백하게 드러나려는 말씀입니다. 

“사탄아,내게서 물러가라.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하시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어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일(길)은 하느님의 일이지만, 베드로의 세상적 영광의 안락함을 바라는 베드로의 일(길)은 사람의 일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드님, 예수님'과 함께 자신도 십자가의 길(곧 하느님의 일)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하느님의 일)을 버리고 세상의 길(사람의 일)을 간다면 얼마나 편안할까요. 지금 시대에서도 십자가 고난의 길을 택하여 스스로 가난해진 사람들이 간혹 있기도 합니다. 또한 현실을 도피해서 봉사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생활의 한 방편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겉 모습은 하느님의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의 속 모습은 초막을 지어 안락함을 추구하는 '가짜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시는 예수님의 길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와 같이 세상의 초막(안락한 삶)을 짓고자 하는 모습, 곧 가짜 십자가의 사람들 삶의 모습을 결코 반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세상의 초막을 지어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성전주의자'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입니까. 그들은 성전 주위에서 바리사이들 처럼 율법같은 것으로 따지며 생활하지만 참 성전이신 예수님과는 사실 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목숨을 사랑하여 자신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 안에 머물지 못한 탓입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1요한5,6)

자기 머리로 가짜 마리아의 메시지는 잘 받아들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잘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진리의 성령보다 가짜 마리아의 자식들이라서 그러한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 듣습니다. 이는 하느님 은총의 덕분으로 진리의 영께서 사람(삶)을 이끌어 주시고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초막을 짓고자 하는 사람의 일은 자기 목숨을 버리려는 각오로 대처해야 합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나와 복음 때문에'가 무슨 의미일까요. 아버지의 뜻에 일치하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길이신 복음, 진리의 길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과 예수님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현실을 도피한 생활 방편으로서의 가짜 십자가 길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리 밖에 있는 가짜 마리아의 메세지 길이 아닙니다. 자기 목숨을 버리기는 누구라도 싫겠지요. 누구나가 베드로 처럼 자기 목숨과 같은 사람의 일을 버리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고 예수님께서 바로 당신을 꾸짖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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