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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복음묵상]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5 조회수601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6년 6월 25일 연중 제12주일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마르코 4,39)

 


He woke up,
rebuked the wind, and said to the sea,

“Quiet! Be still!”
The wind ceased and there was great calm.

 

 

 

 

 예수님께서는 한마디 말씀으로 호수의 바람을 잠재우십니다

 

☆☆☆

 

 거센 돌풍으로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치는데도 고요히 주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한마디 말씀으로 풍랑을 잠재우시는 주님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는 창세기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모든 자연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주님께서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람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보기에 가장 좋게 창조한 인간인데 말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온 세상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오늘 예수께서는 거센 풍랑 앞에 두려움으로 떠는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믿음이 부족한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떠는 것은 비단 제자들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든 일 앞 에서는 겁을 먹게 되며 특히 인간의 능력이 넘지 못하는 한계와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재난 앞에는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믿음보다 더 최고의 약도 없습니다.

인생을 흔히 바다에 떠 있는 배로 비유합니다. 세상은 바다며 바다는 항상 풍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배는 흔들리며 선장이 없고 뱃길을 모르면 인생은 덧없이 표류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래서 바다를 알고 선장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섬마을 선생으로 처음 발령받아 갈 때는 작은 돛단배를 타고 갔습니다. 그때는 마침 역풍이어서 돛을 올리지 못하고 순전히 노만을 저어서 가는데 파도가 뱃머리로 크게 밀려올 때마다 배 안에 물이 사정없이 떨어지는데 여간 겁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널빤지 하나를 눈여겨 보아 두었습니다. 여차하면 그걸 붙잡고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헤엄을 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태연했습니다. 마치 좋은 봄날에 강에 배 띄워 놓고 뱃놀이하는 것처럼 그렇게 술 한잔씩 하면서 즐겼습니다. 누구 하나 겁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다와 바람을 바라보는 눈들이 저하고는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다를 알았고 선장을 믿었으며 또 바람을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하느님 보시기에 그보다 더 경건하고 진실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축복을 받았으며 풍요로운 삶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탄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서 크나큰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게 되며 자신도 문둥병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렸고 아내와 친구들은 욥을 멸시하게 됩니다. 가장 행복했던 사람이 사탄의 시기로 가장 비참하게 됩니다.

인생은 허무했습니다. 착하게 살아도 소용없었고 진실되게 살아도 가치가 없었습니다. 욥은 너무도 억울하고 분해서 하느님께 항변 하며 따지게 됩니다. 사실 욥뿐만 아니라 우리도 일상생활 안에서 똑같은 질문을 하느님께 던지고 있습니다. 왜 선한 사람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왜 착한 사람이 불행에 떨어야 하는가.

오늘 1독서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야훼 하느님의 대답이며 그 대답은 욥에 대한 반문입니다. "바다를 누가 만들었느냐?" 고통 때문에 울부짖고 있는 욥에게 하느님께서는 고통에 대한 설명은 하시지 않고 새로운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바다를 누가 만들었느냐?" 이것은 또 시련 속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똑같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세상은 누가 만들었느냐?"

욥의 질문에 대한 하느님의 반문은 동문서답처럼 여겨지지만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그보다 훌륭한 대답도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세상을 만들었으며 그리고 누가 그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은 하느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요 주인이며 완성자 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그분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욥은 그래서 고난 뒤에 더 큰 축복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마귀의 시기와 질투는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특히 선하고 경건하게 사는 자들을 미워하며 그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이런 땐 침묵 속에 계십니다. 도무지 아무 일도 안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선 한 사람들을 믿으십니다. 경건한 사람들을 신뢰하십니다. 마귀의 세력이 아무리 악랄하게 발광을 해도 선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인생이라는 배의 선장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예수님이 배안에 함께 계시다면 어떤 풍랑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바다도 주님을 삼킬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탄의 시기로 배가 흔들릴 뿐입니다. 그리고 그가 배를 흔드는 것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질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크니까 마귀까지 시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절대로 우리에게 필요없는 고통은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믿음과 기대가 크시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믿고 주 예수님을 더 굳게 믿도록 합시다. 그리고 어려울 때 감사드립시다. 사탄이 시기하고 질투할 정도로 우리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립시다. 이것이 세상이라는 바다를 이기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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