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33) 지팡이 하나만 허락하신 이유/ 박보영 수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4 조회수768 추천수2 반대(0) 신고

 

ㅡ"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벌을 껴입지 말라고 하셨다." (마르 6,7-13)ㅡ

 

 

일 때문에 분원에 다니러 갔더니 수도공사로 하루종일 단수가 되었다.

큰 양동이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 조심조심 아껴 썼다.

설거지 하는 데에도 요량이 필요했다.

물을 아껴 쓰자니 모든 것을 주의 깊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자연 몸놀림도 크지 않도록 살피게 되었다.

자칫 덤벙거리다 귀한 물을 허비하면 낭패기 때문이다.

 

말소리는 낮아지고 주변이나 다음 사람, 다음 일을 생각하는 배려가 살아났다.

한 마디로 단수가 풀릴 때까지만 하루동안 나는 다른 어떤 내가 되어 있었다.

내 안의 문제에 골몰한 나머지 정작 일상생활은 어물쩍 넘어가기 일쑤였던 어제와는 달리 주변과 관계를 살피고, 곰곰 짚어보는 살림의 감각이 생겼다.

 

나 자신만의 옹색한 세상에서 걸어나와, 이 생뚱한 나를 받아들여주고 있는 고마운 세상에 새삼스런 살가움이 되살아났다.

가난은 이렇듯 내 안의 기형적으로 편중된 좁은 사고를 깨고, 눈을 돌려 주변을 살피게 했다.

 

단수가 풀렸다는 동사무소의 방송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아이구 이제 살았다!"라고 탄성을 내면서도 한편 아쉬운 느낌이었다.

내 안의 진정한 어떤 것과 막 대화가 시작되려던 참이었는데......

풍요가 주는 것은 안일하고 나태한 편의적인 사고 밖에는 다른 무엇이 더 없는 것인가.

만 하루동안 살아있는 사람으로, 귀한 물 한 방울에도 몸과 마음이 깨어있던 모습도 결국은 나 자신이며 내 안의 저력이라는 생각이 휙 스쳤다.

 

파견을 받아 길을 떠나는 제자에게 주님께서는 지팡이 하나만 허락하신다.

돈도, 음식도, 여벌의 옷도, 심지어 속옷도 껴입지 말라고 금하신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 하나를 주시며, 내가 너의 힘이 되어주겠노라 하시던 미디안 사막에서의 다짐이 떠오른다.

 

그때 모세는 자신을 낳아준 땅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조국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는 질곡의 땅, 이집트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고 탈출해야만 하는 파견을 받았다.

그는 몹시 두려웠다.

 

오로지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길을 가는 동안, 광대한 이 우주의 나그네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접촉은 하느님의 그것일 터이다.

지팡이는 땅을 딛고 일어서서 길을 가도록 우리를 지탱해주지만 결국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이어주는 열쇠와 같다.

우리에게는 지팡이를 짚도록 허락하시고 둘씩이나 짝지어 보내시는 주님은 정작 자신은 그 지팡이를 등에 지고 수난의 임무를 홀로 완성하실 것이었다.

 

시샘과 호기심과 어디 두고 보자는 심산으로 가득 찬 세상 속으로 가는 길이 결코 평탄치만은 않을 전도 여정에, 주님께서 가난한 지팡이 하나만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시련이 클수록,

내 힘이 고갈될수록,

내 가진 것이 빈한할수록

우리는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다.

 

내가 온전히 가난할 때라야

하느님의 권능이 얼마나 크고 엄위한지

철석같은 체험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글쓴이: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박보영 수녀>

 

               출처: 가톨릭 다이제스트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