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장가 안 가시길 잘했어요 / 강길웅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4 조회수946 추천수5 반대(0) 신고

 

 

 

                      장가 안 가시길 잘했어요


   시내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버스 뒷자리는 이미 여고생들 십여 명이 점령하여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그들의 말을 엿듣게 되었다.


   그때 이런 말이 들렸다.

   “우리집 한심이가 허락 안 할거야.”

   처음엔 무심코 들었으나 나중에 생각하니 그 ‘한심이’라는 말이 어떤 어른을 지칭하는 것 같았다. 어감으로는 아마 가정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한심이’는 가정부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자기 아버지를 부르는 학생들의 은어였다. 집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도대체 한심스럽다 해서 딸들이 지어낸 이름이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또 자기 아버지를 ‘꼰대’ 라고 부르는 것 같았는데 그 의미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많은 아버지들이 제대로 존경을 못 받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어떤 자매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남편이란 사람은 그저 허구헌 날 술입니다. 모처럼 휴일이 돌아오면 낚싯대 들고 새벽같이 나가서는 밤중에 돌아오구요. 어쩌다 집에 있는 날은 종일 낮잠만 잡니다. 이건 뭐 하숙생도 아니고 게다가 건뜻하면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니, 없어도 골치고요 있어도 골치예요.”


   아내가 자기 남편을 말하면서 이젠 넌덜머리가 난다며 진저리를 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괜히 내 쪽에서 더 분개를 하고 흥분을 할 때가 있다.


   도시 본당에 있을 때 젊은 뷰인들이 나를 대놓고 놀린 일이 있었다.

  “신부님은 장가 안 가시길 백번 천번 잘하셨어요.”

   처음엔 내가 그 말의 뜻을 몰라서 무슨 칭찬이려니 하고 함께 웃은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그 말의 뜻은 내가 성격이 괴팍해서 만일에 결혼을 했더라면 그 마누라는 사흘마다 보따리를 싸고 도망갈 채비를 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즉 내겐 남편이나 아버지가 될 자질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말은 맞는 말이다.

   아무나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며 아무나 남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짐승처럼 어저다 짝을 지어 새기 낳아 아비가 되고 어미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부부로 맺어지는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며 또한 아들, 달 낳아 기르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성소이다.


   언젠가 T.V.에서 아버지가 딸을 가리키면서 “너는 내 보물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백 번 맞는 말이다. 부모에겐 자식이 보물이요 자식에겐 부모가 보물이며, 남편에겐 아내가 보물이요 또 그 남편이 보물인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위대한 보물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 자기 가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아무리 돈이 좋고 권력이 좋으며 명예가 좋다 해도 가정은 그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다. 물론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르고 가치기준이 다르지마는 어떤 경우에서건 가정을 무시하는 사람은 그만큼 무시당하는 존재 그 이상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남편에게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그 책임이 반반으로 나눠지게 된다. 남편은 당연히 자신의 가정을 더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지만 아내 역시 그 가정을 편안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희생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만일에 가정이 편치 못하면 남편이나 자식보다는 다른 인식의 대상을 찾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맥주집에서 한 형제를 만났는데  혼자서 너무 지나치게 마시는 것 같아 옆에 앉아 등을 좀 토닥거려 주었더니 이 사람이 갑자기 울면서 자기 마누라하고는 더 이상 못 살겠다는 것이었다.


   형제의 말은 이랬다.

   자기의 상사를 모시다 보니 본의 아니게 색싯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간 일이 있었는데, 별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여차해서 늦었다고 이실직고를 했더니, 아내가 믿지를 못하고 “어떻게 천주교 신자가 그런 집에 갈 수 있느냐?”면서 사실대로 밝히라고 집에만 들어가면 붙들고 닥달을 하니 도무지 피곤해서 못 살겠다는 것이었다.


   여자들은 가끔 남자를 은근히 미치게 만들 때가 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공연히 꼬치꼬치 따지고 덤벼들기 때문에 작은 것이 큰 사고가 되어 서로가 이성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내가 잘 아는 어떤 자매는 특기가 남편의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는 일이다. 그녀는 몇 년 전의 일까지 다 들춰내며 생사람을 공격하다가 시댁의 어른을 들먹거리고 급기야는 ‘종자가 어쩌니’ 하다가는 참지 못한 남편이 주먹을 한방 날릴 양이면 ‘이놈이 날 때린다’며 동네방네 소리소리 지르며 환장을 하니 자녀들이 그 지옥 같은 가정에서 뭘 배우는지는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자녀들이 볼 적에 어른들의 세계는 ‘한심 플러스 한심’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도 한심이요 어머니도 한심이니 그 가정에서 사고뭉치의 ‘두심이’가 생겨나는 것은 아주 마땅하고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요즘 흔히 ‘청소년 문제’ 운운하며 어른들이 걱정을 하고 있지만 그게 모두 청소년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어른들의 문제요, 부모들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자녀는 부모의 얼굴인 것이다. 밥을 주고 돈을 준다고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며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할 대 부모가 되고 어른이 되는 것이다.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본당 주임)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