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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6) 비 오는 날에 / 전 원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2 조회수836 추천수7 반대(0) 신고

 

                           비 오는 날에

 

                                                 말씀지기 주간 : 전 원 신부님의 글

 

얼마 전 비 내리는 날 짧은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의 목적지라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한, 어느 화가 부부가 양평의 작은 마을에 터를 잡고 살면서 갤러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평화로운 옥천면의 농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야산 중턱에 자리잡은 갤러리는 야생화를 그리는 화가의 집답게 온통 들꽃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한 번도 이름을 묻지 않고 지나쳤던 풀꽃들이, 야생화를 사랑하는 화가의 집 뜰에서는 저마다 제 이름이 붙여져서 자신의 존재를 한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작은 풀꽃 하나에도 제 이름을 불러주고 꽃말을 엮어 넣으면 이렇게 소중한 친구가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처음 느껴본 것입니다만, 야생화는 줄기와 무성한 잎사귀에 비해 꽃봉오리가 자그마한 것이 공통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생화를 관찰할 때는 마치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얼굴을 가까이 대고 바라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작고 이름도 낯선 풀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꽃의 품위를 잃지 않는 당당함과 고고한 자태가 여느 꽃 못지않게 배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비 내리는 날, 작은 빗방울에도 시달리며 연신 고갯짓하는 풀꽃들이 이 땅에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사는  민초(民草)들 같았습니다.

 

발아래 보이는 야생화 못지않게 수채화 같은 비 내리는 시골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유난히 산이 많고 숲이 우거진 우리 나라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집들이 산과 강과 어우러져 한 폭의 평화로운 그림을 만들어 냅니다.

이젠 곳곳에 골프장이 들어서고 고속도로가 뚫려 산천이 엉망이 되어 가고 있지만, 그나마 서울 근교에서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느껴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날, 산 중턱에 자리잡은 갤러리의 창가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비의 종류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소낙비 장대비 가랑비 보슬비 안개비 여우비.....

 

문득 오랜 추억 속의 영화 장면 같은 시골 풍경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낡은 영화필름을 돌리듯 하늘에서 흰 선을 그으며 죽죽 쏟아지는 장대비를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그날은 내리던 가랑비마저도 그치고 말았습니다.

 

유난히 비를 좋아하는 저는 일상이 바쁘면 바쁠수록 이런 비 오는 날의 풍경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굳이 이렇게 잘 꾸민 집이 아니더라도, 어느 외딴 민박집 처마 밑 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는 것도, 허름한 시골집 문턱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받쳐 들고 빗소리를 들으며 언젠가 한번쯤 재미있게 읽었던 책 한 권을 다시 꺼내들고 읽는 것도...... 왠지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차창에 떨어지는 빗물을 쓰레질하며 차를 몰고 어디론가 목적 없이 달리고도 싶고, 때론 숲이 보이는 조용한 찻집 창가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 못다 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비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내 영혼에 찌든 때를 모두 씻어내듯 쏟아지는 빗속에서 흠뻑 젖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유독 이런저런 상념들이 많아지는 것은 아직 살아가면서 못다 한 그 무엇이 가슴 한 켠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사람들은 목마름처럼 갈망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지식에 목말라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돈에 재산에 명예에 쾌락에 늘 갈증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하느님이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로 그것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숙제처럼 우리 가슴 한 켠에 안고 사는 그 갈망의 뿌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면서 우리 안에 새겨준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운명론처럼 우리 삶의 방향이 그 어디로 정해져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내 삶을 개척해 나가되, 그 삶 안에서 나를 향한 하느님의 간절한 원의(願意)를 살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삶이 늘 불안하고 외롭게 느껴지는 것은 재물이나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분의 원의를 내 삶에서 채워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 오는 날, 빗물처럼 마음 밑바닥까지 스며든 저의 성찰은 사제로서의 갈망의 정체를 깨닫게 했습니다. 내 삶의 기쁨과 평화는 결국 사제직의 본질을 살아낼 때에야 만날 수 있다는 무거운  화두(話頭) 하나를 건네받았습니다.

아울러 내 힘으로는 온전히 감당해내기 어려운 한계 앞에서 결국은

 

                                     "하느님!"

 

하고 자비를 빌며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공중에서 쏟아지는 비가 땅에서 열매를 맺는 것은(이사 55,10),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그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많아질 때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6월 말에서 7월에 걸치는 장마를 두고 오랫동안 비가 온다고 하여 '오란비' 라고 불렀습니다.

비 오는 날의 짧은 여행은, 이번 장마가 긴 피정처럼 우리들 인생에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은총의 오란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하나 건네주었습니다.

                                   말씀지기 <편집자 레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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