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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복음묵상]기도의 심화과정 : 주님의 기도/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2 조회수785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6년 6월 22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놀라의 성 바울리노 주교,

또는 성 요한 피셔 주교와 성 토마스 모어 순교자 기념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마태오 6,10)


Thy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용서를 강조하십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곧 하느님의 뜻대로 다스려지는 곳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펼쳐질 수 있는 곳은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내맡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죽음 앞에서조차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을 내맡기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 마리아에게서, 또 예수님에게서 당신의 뜻을 펼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두 분을 본받는 우리의 신앙으로 마침내 하느님 나라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 기도의 심화과정 : 주님의 기도 †  

율법의 참 뜻을 바탕으로 십계명의 제5계명부터 제10계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선포하신 예수께서는 십계명을 응용한 덕행의 목록과 함께 이를 고양할 수 있는 지침을 제시하신다. 자선(慈善, charity)과 기도(祈禱, prayer)와 단식(斷食, abstinence) 등의 선행은 신앙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행들이다.

그렇다고 이들 선행을 모든 신앙인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선행은 요구가 아니라 초대라는 말이다. 이는 마치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세금으로 정한 이외의 부분을 강제로 징수할 수 없는 원리와 같다. 국민이 가지는 납세의 의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이웃에 대한 봉사나 후원이나 기부금 등과 같은 것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선행에 속한다.

과거 행복, 안녕, 복리, 복지라는 뜻을 가진 웰빙(well-being)이라는 개념이 현대사회에서는 바쁜 일상과 인스턴트 식품, 스트레스로부터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추구하려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life-style)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십계명만 잘 지켰다고 신앙생활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를 더불어 빛낼 수 있는 덕(德, virtue)을 수행해야 한다. 기왕에 덕을 수행하자면 예수께서 제시하는 수행지침을 따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초대받은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기도(祈禱)에 대한 심화과정이 주어진다. 아우구스티노(354-430) 성인께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고 했듯이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기도하기를 꺼려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영혼의 숨쉬기를 싫어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도에는 특별한 장소와 시간이 있어야 할 것 같고, 기도가 왠지 어렵게 느껴지며, 기도에 대단한 문장(文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는 오로지 기도로서만 학습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이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8절) 그러면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아니다. 전지(全知)하신 하느님께서 자녀들의 필요함을 다 알고 계심은 당연한 일이다. 하느님께서 이미 알고 계신 것과 우리가 청하는 기도는 엄연히 구별된다. 알고 계신다고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함을 가르치시면서 "주님의 기도"(9-13절)를 들려주신다.

"주님의 기도"는 우선 예수님이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일곱 가지 청원을 담고 있다.
전반부의 세 가지 청원은 ① 아버지의 이름, ② 아버지의 나라, ③ 아버지의 뜻에 관한 것으로서 하느님에 대한 청원이다.
후반부의 네 가지 청원은 ④ 우리의 일용할 양식, ⑤ 우리 잘못의 용서, ⑥ 유혹으로부터 보호, ⑦ 악에서의 구원에 관한 것으로서 우리 인간 자신과 삶에 대한 청원이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의 청원에 의해 이 땅에 하느님의 영광(이름)과 통치(나라)와 섭리(뜻)가 계시되었음을 선포하는 감사와 찬양기도이며, 이 땅위에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육체적 구원(양식)과 영혼의 구원(용서)을 도모하여, 모든 인간을 온갖 유혹과 악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종말론적 구원을 주시려는 예수님의 다짐기도인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는 당신의 기도를 우리에게 물려주신다. 그럼으로써 주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기도를 바치신 예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다음은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작자미상의 "주님의 기도"에 관한 글이다.

내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만일 나의 관심과 취미가 세상 것들에만 있다면,
나는 "하늘에 계신"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나의 믿음이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어려움에 대한 여유를 갖고 있지 않다면
나는 "우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매일의 삶 안에서 아버지와 이루는 관계를 증명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버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모든 일에서 하느님께 대한 존경과 영광과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나의 마음 안에, 우리 집에, 우리 학교에, 우리 성당에, 우리나라에,
그리고 전 세계에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마지못해 한다면,
나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나의 삶에서 아버지의 뜻을 마지못해 따르거나 화를 내며 한다면,
나는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지금 여기서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나 자신을 내어놓을 진정한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매일의 양식을 얻기 위한 정직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가족과 친구, 이웃의 분명한 요구를 무시한 채, 나는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계속해서 원한을 품거나 비방한다면, 나는 "저희에게 잘못한 일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유혹 받을 상황에 고의적으로 남아 있다면,
나는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하느님의 말씀과 기도라는 무기를 가지고 영적 세계에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나는 "악에서 구하소서"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의 영광을 먼저 찾는다면,
나는 "영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여기 내 삶 안에 계신 하느님보다 매일 발생하는 일들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면, 나는 "영원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정직하게 "어떠한 값도 치르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기도입니다" 하고 말하지 않는 한, 나는 "아멘"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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