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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동생 인숙이!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1 조회수1,085 추천수18 반대(0) 신고

 

 

 

                                       내 동생 인숙이!



   나는 7남매 중의 둘째로서 차남이며 ‘인숙이’라는 여동생은 여섯째로서 차녀이다. 나이 차이는 열세 살로서 지금  그의 나이는 서른여섯이다.


   중학생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으레 동생 인숙이를 업어줘야만 했다. 형도 있고 동생도 있지만 애기 보는 일은 늘 내게만 주어졌었다.

    

   그날도 나는 아기를 업은 채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무슨 발작이 일어나는데 아주 불길하면서도 대단히 무서웠으며, 생전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얼른 어머니를 불렀더니 어머니는 “이놈의 새끼, 애기를 잘못 보았구나” 하면서 나를 꾸짖었지만 경기(경풍)를 하고 있는 여동생 앞에서 어머니도 몹시 놀라고 계셨다.


   우리집은 그날부터 어둠의 긴 터널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 길이 얼마나 멀고 아득한지 미처 상상도 못했으며, 엄청난 일을이 그 후로 수없이 벌어지곤 했었다.


   간질!(실제는 병명이 모호하고 더 무서운 병이었다)

   내 여동생의 병명이 그것이라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동생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발작을 하는데 어떤 때는 하루 열 번도 더 하는 때가 있었다. 파란 하늘만 봐도 공연히 깜박 깜박 놀라서는 벌렁 나자빠져서 입에 거품을 내고 온몸을 뒤틀며 흔들어대곤 하였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 무서운 병을 가진 자가 우리집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집은 동생의 병을 고치려는 노력과 함께 동생의 병을 감추려는 작업도 눈물나게 하였다.


   인숙이는 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월의 어느 싸늘한 새벽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런데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너무도 이상해서 외할머니를 모시러 외갓집으로 달려가던 어린 내 가슴에 불안한 예감을 안겨다 주었다. 그 이상한 예감은 우리 식구 중에 유독 나만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전혀 느끼질 못했었다.


   동생은 상당히 예쁘고 똑똑했었다. 세 살 때는 “나 천지를 조성하신......” 하는 당시의 사도신경도 딸딸 외웠으며, 그때 유행하던 ‘아리조나 카우보이’라든가 ‘홍콩 아가씨’ 등을 아주 잘 불러서 두려움과 함께 많은 기쁨도 선사했었다.


   우리는 동생의 병 때문에 기도를 많이 했었다. 그러나 54일 기도가 몇 번이나 돌아도 성모님은 꿈적도 않으셨으며, 예수님 또한 남의 일보듯 그렇게 철저히 외면하시는 듯했다.


   빚도 많이 졌었다. 병원이란 병원은 다 돌아다니려니까 금새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으며, 한 달에 1할 5부씩 하는 이자는 눈덩이보다 더 크게 불어나게 되었다.


   처음부터 잘 싸우셨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 많이 싸우시게 되었고, 어머니는 유독 히스테리 증세가 악화되어 우리는 매일 매일 무서운 전투를 치러야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실로 무서운 세월들이었다.


   내가 신학교에 못 가고 사범학교에 들어가 선생이 된 것도 그탓이엇으며, 그 후로 십여 년의 세월에 걸쳐 그 숱한 빚을 함께 갚으면서 우리는 사실 많은 반성과 성찰을 하게 되엇다. 그리고 인숙이는 약을 중단한 열 살 때부터 폐인이 되어 식물인간이 되엇으며, 먹고 배설하고 발작하는 일 이외에는 그저 누워만 잇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여동생이 지금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부모의 사랑 속에서 여전히 온몸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다. 머리는 박박 깎았고 이빨은 또 여러 개 썩어서 그 몰골이 참으로 말이 아니지만 어떤 천사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을 인숙이에게서 발견하곤 한다.


   “인숙아, 네가 오빠를 신부로 만들었다!”

   내가 마흔 살에 신부가 되었을 때 친척들이 먼저 인숙이에게 달려가서 들려준 말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인숙이와 나와는 보이지 않는 많은 연결이 하느님 앞에 있었다.

   

   지금도 동생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성직자인 내 삶과 분명히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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