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베네딕토 성인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1 조회수359 추천수5 반대(0)

어제는 용문 장날이었습니다. 장 구경을 하고, 제가 좋아하는 막걸리와 돼지 껍데기를 먹었습니다. 옆자리에 어르신 한분이 앉으셨습니다. 제가 먹던 껍데기를 드리면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분당에 사시는 어르신인데 지하철을 타고 지난주에는 춘천에 갔었고, 오늘은 용문 장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가시느냐 여쭈어보니 용문에서 지하철을 타시고, 왕십리에서 내려서 분당가는 지하철을 타신다고 하십니다. 70이 넘으신 연세에 그렇게 다니시는 것도 존경스러웠고, 그런 체력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어르신의 핸드폰에 제가 아는 신부님 사진이 있어서 저도 사제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반가워 하셨습니다. 세상살이가 참 좁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인연이 참 오묘하기도 합니다.

10여 년 전에 용문 수련장에서 근무를 하셨던 신부님께서 청년들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본인이 있을 때 만들었던 야영장을 보수하고 싶다고 오셨습니다. 저 같으면 10년도 지난 일이고, 예전에 있었던 곳을 그렇게 찾으러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수련장을 위해서 땀을 흘리시는 신부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이래저래 저는 능력은 없는데 사람 복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시나 봅니다.

어제는 동창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그 본당에 미사를 도와 드리러 갔다가, 늦게 오신 신부님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본당의 부채가 많기 때문에 늘 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자신이 있는 동안에 본당의 부채를 다 상환하고, 다음 신부님께서 오시면 편안하게 사목을 하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각 단체의 예산 지원은 최소화하고 행사를 축소하고, 돈이 들어가는 일들은 취소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헌신적으로 사목을 하셨습니다. 본당의 재정, 관리, 행정 업무를 탁월하게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본당을 떠나실 때, 본당의 부채는 많이 상환하겠지만 신자들은 신부님과 함께한 사목의 추억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로이 신부님께서 부임하셨지만 신부님은 어느덧 본당의 보수 공사를 할 때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부님께서는 신자 분들의 마음에 사랑을 주어야 하고, 기쁨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2007년도에 본당신부로 부임을 했습니다. 그 본당 역시 부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돈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신자 분들이 축일에 주는 축하금은 모두 본당 건축헌금으로 봉헌하였습니다. 각 단체의 예산도 정상적으로 집행하였습니다. 교무금과 헌금 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신자 분들이 오히려 본당의 부채 상환을 걱정하셨고, 자발적으로 감사헌금을 내셨습니다. 본당의 행사가 있으면 구역 단위로 봉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연도를 자주 다니고, 성사를 충실하게 집전하고, 신자들 중에는 가난한 이, 외로운 이, 아픈 이들을 주로 만났습니다. 본당을 떠날 때, 그래도 많은 부채가 상환되어 있었고, 조금만 남았습니다. 후임신부님께서도 조금 남은 부채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제 내린 비 때문에 오늘 옷을 적시지 말고, 아직 내리지 않은 비 때문에 오늘 우산을 펴지 말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요셉을 이집트의 재상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12제자들 파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을 위해서는 교회를 세워주셨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하나만 더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도록 용기를 주시고, 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하도록 겸손을 주시고, 이 둘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본당의 재정 자립을 위해서 모든 것을 긴축하신 신부님과 모든 것을 신자 분들에게 맡긴 제가 서로 맞거나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목의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사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보기 보다는 서로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다양성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돼지 껍데기와 막걸리를 드시고 싶으시면 5일과 10일에 열리는 ‘용문장’으로 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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