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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복음묵상]십계명의 응용 : 자선, 기도, 단식/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1 조회수801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6년 6월 21일 수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오 6,3)

 

 When you give alms,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is doing,
so that your almsgiving may be secret.
And your Father who sees in secret will repay you.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자선과 기도, 단식에 관하여 가르치십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너는 단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

 

 자선과 기도, 단식은 우리가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올바른 자선과 기도, 단식이란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남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는 짐짓 옳고 멋진 사람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선과 기도, 단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드러내 보여야만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숨은 일도 모두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전능하심을 먼저 인정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악행은 하느님께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사람을 속일 수는 있으나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 십계명의 응용 : 자선, 기도, 단식 †  

십계명의 응용: 자선·기도·단식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도래한 하느님나라에 통용될 새로운 "의로움"을 6개의 대당명제(5,21-48)를 통하여 조직적으로 선포하셨다. 대당명제는 구약의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으로 피력되었으며, 이 새로운 해석은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의 틀을 깨고 율법의 참된 정신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는 곧 법의 형식논리를 넘어 법의 정신을 구현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구약의 의로움이 폐기된 것은 아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구약의 율법을 글자 그대로 준수함으로써 예수로부터 위선자로 책망 받기도 했으나 그들의 "의(義)"를 인정받았다. 이는 구약의 율법 자체가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구약의 모든 율법과 규정의 근간이 되는 "십계명"(十誡命, Decalogue)이 건재(健在)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 도래한 하느님나라를 위해 선포하시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나은 의로움이 십계명의 기본 정신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십계명"이라는 단어가 모세오경에 들어 있지는 않다. 이 단어는 17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오경(五經)에는 "증거판"(출애 31,18; 32,15; 신명 4,15), "훈계와 계명의 돌판"(출애 24,12; 25,16), 또는 "두 돌판"(신명 5,22)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새로운 의로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구약에 주어진 십계명(출애 20,2-17; 신명 5,6-21)의 참 뜻을 하나하나 새겨들어야 한다.

십계명은 유일(唯一)하고 참되신 하느님께서 그분이 선택하시는 백성과 맺으시는 계약이다. 그래서 십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을 의미하며, 인간의 응답에 대하여 하느님은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며, 이것으로 인간은 자신의 품위를 회복해 나가는 것이다. 십계명의 참된 의미에 대한 해설은 도서출판 "일과 놀이"가 펴낸 해설판 공동번역 성서를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116-119 페이지 참조)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십계명 전부를 열거하여 각각의 계명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해 주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행적은 십계명에 대한 충분한 풀이로 간주된다. 마태오복음 5장의 여섯 개 대당명제는 우선 십계명의 5계명부터 10계명까지의 새로운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오늘부터 토요일까지 4일간 평일미사의 복음으로는 산상설교의 둘째 부분(마태 6장)이 봉독된다. 마태오복음 6장은 대당명제와 같은 비중의 율법(律法)에 속하지는 않지만 신앙인으로서 지녀야할 성덕(聖德)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는 "십계명의 응용"인 셈이다.

예수께서는 신앙인의 성덕으로 자선(慈善)과 기도(祈禱)와 단식(斷食)을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제시하신다. 그렇다고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는 이미 유대교 안에서 널리 수행되었던 덕목(德目)들이며, 예수님 당대에는 특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선행(善行)을 쌓을 목적으로 사용했던 수단들이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하여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새로움은 무엇인가?
일단 이러한 선행(善行)을 수행함에 있어서 "일부러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1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행이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수행되거나,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그 자체가 이미 상(償)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償)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 선행지침을 엄수(嚴守)해야 한다. 즉, "자선을 베풀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것"(3절)이며,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할 것"(6절)이고, "단식할 때 얼굴을 깨끗이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할 것(17절)"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숨을 일까지 모두 보시는 하느님께서 보답해 줄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내리시는 선행지침을 글자그대로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모든 선행이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숨을 일도 다 보시는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선행을 행하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받고싶어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조그만 선행을 하고도 크게 불려서 나팔을 불며 떠벌리고, 남이 몰라주면 오히려 섭섭해하는 우리들이다. 자신의 선행을 남들이 알아줄 때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받을 상을 다 받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과 신뢰심과 겸손의 마음이다. 신앙인은 이웃에 대한 자선을 통하여 사랑을 배우게 되고,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신뢰심을 얻게 되며, 음식과 육정(肉情)을 절제하는 단식을 통하여 겸손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이다.
-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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