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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복음묵상] 먼저 자신의 열매를 보라 /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28 조회수832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6년 6월 28일 성 이레네요 주교 순교자 기념일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마태오 7,16)

 

 By their fruits you will know them.

 

 

 

 예수님께서는 좋은 열매로 좋은 나무를 알 수 있듯이, 좋은 사람도 그 결실로 알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일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 판단하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열매를 기다리기보다는 보는 첫 순간에 판단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괜찮은 사람으로 판단하였으나 그게 아닌 사람, 반대로 처음에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여겼으나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난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서두르지 맙시다. 함부로 판단하지 맙시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 먼저 자신의 열매를 보라 †


어제 복음에서 산상설교의 결론이자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으로 “너희가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는 황금률이 선포되었다. 사실 황금률은 행동함에 있어서 최소한의 규범이다. 사실상 요구되는 것은 그 이상이다. 그래서 의인(義人)의 길은 외롭다고 했던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옳게 산다는 것, 나아가 남보다 더 옳게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의인의 길은 좁고 외롭다. 그러나 이 길을 걷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바로 이 생명의 길을 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소중한 삶의 지침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행동의 지침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행동이란 경우에 따라 많은 변수를 가져오기 때문에 행동지침에 대한 늘 새로운 해석과 응용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거짓 예언자들을 경계하고, 그들을 참 예언자들로부터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가르치시는 대목이다. 속에는 사나운 이리를 품은 거짓 예언자가 겉으로는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겉포장이 화려하고 요란할수록 내용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겉모양이 양처럼 부드럽고 고울수록 그 마음도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만약에 그러한 겉과 속이 다르다면 실망 또한 클 것인즉, 그것이 거짓 예언자라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참 예언자가 공동체에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거짓 예언자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거짓 예언자에 대한 구별은 참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예수께서는 나무와 열매의 비유를 통하여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원리를 구별의 기준으로 내세우신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보다 행위의 과정과 결과가 구별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는 언제나 함께 있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예수님 당대에도 그랬고, 마태오복음 공동체 안에서도 그랬다. 구약시대의 예레미야 예언자도 일생 동안 전문적인 거짓 예언자들과 대결을 벌였다. 예레미야는 야훼께서 보여주시는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의 구별을 통하여 자신을 참 예언자(예레 26,1-24)로 거짓 예언자(예레 23,9-40; 특히 거짓 예언자 하나니야: 28,1-17)와 구별하였고, 거짓 예언자와 섞은 사제들이 한 통이 되어 이스라엘 전체를 그릇 인도하고 있음을 통탄하였다.


예레미야에 의하면 참 예언자는 백성을 일깨워 회개하도록 하지만, 거짓 예언자는 자신의 이익을 좇아 권력에 아부하느라 정신을 빼앗긴다고 하였다. 아모스 예언자도 거짓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꾸짖지 않고 오히려 원수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그들의 멸망을 예언하지만, 참 예언자는 이스라엘 자신의 죄를 고발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한다고 하였다.(아모 1,3-2,16)


신약성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여 결성된 초대교회에 대한 연구 자료로 빼놓을 수 없는 문헌은 단연 100년 이후에 집필된 ‘디다케’로 손꼽힌다. 《12사도의 교훈》으로 통용되는 디다케는 총 16장으로 구성된 초대교회 규율에 관한 지도서로서 신약외경(新約外經)에 속한다. 예언과 복음의 수용자세를 다루고 있는 11장에 다음과 같은 거짓 사도와 예언자의 식별 기준이 들어있다. “사도는 하루 동안만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이틀을 머물러도 된다. 그러나 사흘이나 머물면 그는 거짓 예언자이다. 사도가 떠날 때는 다음 머물 곳을 찾을 때까지 필요한 빵밖에는 더 가지지 말아야 한다. 만약 돈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이다. 영(靈)으로 말한다고 모두가 다 예언자인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생활태도를 지녀야만 예언자이다.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는 그 생활태도로써 밝혀진다.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자라도 가르치는 것들을 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짓 예언자이다. 누구든지 영으로 말한다면서 돈이나 다른 어떤 것을 달라고 한다면 그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다른 빈궁한 이들을 위해서 달라고 한다면 아무도 그를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디다케 11)


예언서와 디다케를 근거로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식별하는 방법을 요약한다면, 참 예언자는 주님의 양떼를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바치지만 거짓 예언자는 생명은커녕 자신에게 손해 될 일은 하지 않는다. 참 예언자는 하느님나라를 구현하기 위하여 자신과 공동체의 끊임없는 쇄신과 회개를 촉구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고 필요하다면 쓰레기로 여기지만(필립 3,8), 거짓 예언자는 되도록 남의 잘못을 꾸짖고 남의 불행을 축복하면서 개인의 이익과 명성을 도모하고 하느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학식과 견해에 더 의존한다. 이러한 기준이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행실을 보고 아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도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는 공존한다. 그러나 오늘 복음을 통하여 얻은 식별의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여야 한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일은 공동체의 사랑과 일치를 쉽게 깨뜨릴 수 있다. 따라서 남보다는 우선 내가 스스로 맺는 열매에 따라 주님의 ‘참 제자요, 참 목자’인지를 물어보고 점검하여야 할 것이다.........◆


- 박상대 마르코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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