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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수칠 때 떠나라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22 조회수1,103 추천수19 반대(0) 신고
5월 23일 부활 제6주간 화요일-요한 16장 5-11절


“너희에게 진실로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박수칠 때 떠나라>


‘박수칠 때 떠나라’는 영화제목이 있었지요. 무엇이든 한번 잡으면 끝까지 꽉 잡고 죽어도 놓지 않으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인 것 같습니다.


정치인이나 대중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의 쇠락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바입니다. 아직 잘 나갈 때, 그나마 인기가 남아있을 때, 사람들이 잘 한다 잘 한다 할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 ‘퇴물’이란 소리 듣기 전에 스스로 내려오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언젠가 유럽 한 본당에 사목을 도와주러 갔었는데, 그쪽 교구 인사 시스템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 본당에 발령을 받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은퇴할 때 까지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좋은 측면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 큰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간의 문제가 없으면 괜찮겠는데, 마음에 맞지 않는 사목자, 혹은 신자들과 한 평생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 꽤 피곤한 일 같았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한국 교회의 정기적인 사제 인사 방식은 꽤 바람직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보좌 신부님들은 1-2년, 주임 신부님들은 4-5년 만에 한번 씩 순환되니, 사목의 일관성, 지속성 면에서는 취약점이 생기겠지만, 다양성, 변화나 쇄신 측면에서는 아주 좋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사이동 때 마다 하게 되는 제 작은 체험입니다. 떠날 때 마다 남게 되는 아쉬움이 매우 큽니다. 인사이동이 발표되고 나서도 걱정이 큽니다. 내가 떠나면 저 불쌍한 아이들은 어떻게 되나, 내가 떠나고 나면 저 아이들이 입게 될 상처가 만만치 않을 텐데, 내가 떠나고 나면 기껏 안정시켜놓은 이 시스템은 어떻게 되나? 누가 후임자로 올 것인가? 그가 나보다 많이 부족해 보이는데, 과연 잘 해낼 수 있겠는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단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기우였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내가 떠나고 나서 한 달, 두 달, 일 년, 이년이 지나가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더 발전했으면 발전했지 특별히 잘 안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몇일 보고 싶어 하겠지만,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것, 잘 잊어먹는다는 것이 또 아이들 특징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들어 저는 ‘인사이동’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한 3년 지나면, 즉시 직면하는 어려움이 강론 밑천이 바닥나는 것입니다. 매일 같은 소리 반복합니다. 또 모든 주변 상황에 익숙하다보니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변화나 쇄신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기보다는 작년 것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쇄신이나 발전, 성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가장 좋은 처방약은 인사이동입니다. 떠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떠나게 되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요. 새로운 사람이 오게 될 때 그 사람과 함께 새로운 바람이 유입됩니다. 공동체에 갑자기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떠나십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새로운 바람이신 성령께서 오실 수 있도록 떠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지상생활에 대한 아쉬움으로 제때 떠나지 않으셨다면, 그간의 인연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자꾸 공생활을 연기하셨다면, 하느님 아버지의 인류구속 사업은 그만큼 지장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떠남과 성령의 도래, 이는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에 들어있던 기본 골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묵묵히 당신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에게 진실로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부모님들께서 두 분 다 멀리 여행을 떠나실 때, 걱정들이 대단하지요. 그러나 결과를 두고 보면 서로를 위해 훨씬 유익한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개구쟁이 자식들이라 할지라도 정작 부모님 부재 시에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지요.


‘이럴 때 일수록 우리가 잘 해야 되. 부모님 안 계시는 동안 우리끼리 똘똘 뭉쳐 잘 한번 해보자. 그분들 걱정 안하시게 열심히 하자!’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척에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챙겨주실 때는 딴 짓 하고 정신 못 차리고 그랬었는데, 예수님께서 떠나시고 나자 한 가지 특별한 일이 생겼습니다.


제자들이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후 제자들의 육적인 눈이 서서히 정화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가고 나신 후에야 그분의 가르침이 하나하나 제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의 내면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협조자 성령을 보내셨을 때 비로소 제자들은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줄 알게 되었습니다. 불완전했던 믿음이 완전해졌습니다. 희미했던 예수님의 실체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정확하게 알게 된 제자들은 그분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성령께서 오시도록 다시금 길 떠나길 바랍니다. 협조자께서 오시도록 우리 자리를 내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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