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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절두산 성지 순례 후기 올립니다
작성자박관우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23 조회수1,698 추천수0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순교자 성월을 맞이 하면서 절두산 성지를 순례하여 보람있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 칼럼에 순례 후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남종삼 성인님의 일대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절두산 성지 지하 경당에 남종삼 성인님을

포함하여 28위의 유해가 안치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순례 첫번째 계획으로 지하 경당에 안치된 남종삼 성인님의 유해를 참배하면서

장궤에 무릎을 꿇고 묵주신공 5단을 바쳤으니 절두산 성당에서 영세한지 38년만에 처음으로

성인님의 유해 앞에서 기도를 바치게 되어서 참으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이어서 순교자 기념 박물관을 순례하였는데 봉사자분이 친절하게 인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전시되어 있는 여러 자료중에서 최양업 신부님과 김대건 신부님의 친필 서한 원본을 직접

확인하여 참으로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봉사자이신 자매님께서 최양업 신부님의 서한이 어떻게 하여 절두산 성지 박물관에

전시하게 된 것인지 그 경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최초의 방인 사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장렬히 순교를 맞이하신 사실도 많이 알려졌으나 그에 반하여 최양업 신부님의 생애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고 보며 저 또한 최 신부님에 대하여 모르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최 신부님의 친필서한을 직접 뵈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는데 최 신부님께서는 

김 신부님과 최방제님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에서 함께 동문수학을 하였으며, 

김 신부님에 이어서 두번째로 서품되신 분이며, 12년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목자로서 

열정적인 사목활동을 하시다가 1861년 선종하셨습니다.


여기서 최 신부님은 참수가 아닌 병으로 선종하신 것이기에 좁은 의미에서 순교자로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습니다만 광의의 의미에서 볼 때 결국 복음 전파를 하시다가 선종하신 것이므로 

순교자로 호칭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 봉사자 자매님의 말씀을 통하여 현재 최 신부님이 복자품의 바로 전단계인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우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으며, 하루빨리 최 신부님께서도 복자품에 오르시길 기도드립니다.


박물관 순례에 이어서 1854년 성모님께서 성녀 벨라데따님에게 발현하신 동굴을 모델로 하여 

조성된 성모동굴 앞에서 주모경을 바쳤습니다.


이제 발걸음을 남종삼 성인님의 일대기를 쓰게 된 최초의 동기부여가 되었던 사적지로 향하였습니다.


몇개월만에 다시 순례하였지만 처음에 발견할 때와 또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몇가지 추가로 촬영하였는데 사적지 입구에 있는 리스트를 간략하게 소개한 돌판을 촬영하였으며,

더불어 남종삼 성인님의 순교사적비 옆면과 후면도 추가로 촬영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코스가 있으니 부활의 집에 안치된 저의 누이동생 루시아를 만나는 일입니다.


교사로 재직중이던 루시아가 청천병력의 암을 진단받고 3년동안 투병생활하다가 결국 2015년 

5월 11일 성모성월에 천국으로 떠났는데 그 유해가 바로 절두산 성지 부활의 집에 안치되어 있는데 

추석을 앞두고 동생의 영원한 안식을 지향하면서 주모경 바쳤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절두산 성지는 저의 삶에 있어서 깊은 인연을 맺은 신앙의 고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감사합니다.


2018년 9월 22일(토) 박관우 역사작가 올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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