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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된 목자의 모습 보여주신 최양업(토마스) 신부님의 시복이 하루빨리 이루어지시길 기도드립니다
작성자박관우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23 조회수1,447 추천수0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어제 절두산 성지를 순례하여 최양업(토마스) 신부님께서 파리외방전교회에 보내셨던 친필 서한을 직접 확인한 것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최 신부님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 최 신부님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었으나 영감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평소 영감에 의하여 수백편의 칼럼을 완성하였으나, 특히 신앙 관련 칼럼에 최 신부님을 주제로 한 칼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순교자 성월 시기에 처음으로 본 최 신부님의 친필 서한을 보면서 이번 기회에 신부님을 소개하는 칼럼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강완숙 복자님과 남종삼 성인님 같이 그 생애를 연재식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순교자 성월이 지나기 전에 최 신부님을 소개하는 칼럼을 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최 신부님의 친필 서한을 본 이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구상을 하다가 조금전 그 윤곽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본격적으로 쓰려고 합니다.


본 칼럼은 일대기가 아니라 최 신부님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전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포함된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최 신부님은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과 같은 해인 1821년에 출생하셨는데 최 신부님은 3월 1일이며, 김 신부님은 8월 21일이시기에 최 신부님이 6개월 정도 먼저 출생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신부님의 공통점이 있으니 같은 충청남도 지역에서 출생하셨다는 것인데 최 신부님은 청양이요, 김 신부님은 당진이시라는 점입니다.


또한 두 신부님은 인척관계라는 점인데 사실 정확한 촌수는 모르겠지만 최 신부님의 증조모님의 오빠가 이존창 성인님이 되시고 김 신부님의 조모님이 이존창 성인님의 조카 따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두 신부님은 같은 해에 출생하시고 장소도 충청남도이시며 더 나아가서 인척관계에다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결국 사제서품을 받았으니 특별한 인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 선교활동하고 있던 모방 신부님에 의하여 1836년 최 신부님을 비롯하여 사촌형제인 최방제님과 김 신부님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경리부로 떠나 7개월만에 도착하였으나 그 이후 최방제님은 병으로 선종하시고 김 신부님이 1845년, 최 신부님이 1849년 사제로 서품되셨습니다.


최 신부님이 서품될 당시 조선에는 방인 신부님이 전혀 없었는데 최 신부님이 유일하게 방인 신부님이셨으니 얼마나 귀한 분이셨겠습니까!


상해에서 마레스카 주교님의 집전으로 서품되신 이후 우여곡절속에 조선에 입국하시는데 성공하신 이후 12년동안 헌신적으로 사목활동을 하시다가 결국 과로와 장티푸스로 인하여 불과 41세라는 젊은 연령에 선종하셨으니 생각할수록 통탄스러운 심정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동안 이런 최 신부님에 대하여 큰 관심이 없었으며, 깊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을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김 신부님은 무엇보다도 조선의 첫 사제라는 상징성이 있었으며, 더군다가 26세의 젊은 연령으로 새남터에서 장렬한 순교를 하셨기에 그 의미가 남달랐다고 할 수 있으나 교회사에 관심이 많았던 입장에서 의아스러울 정도로 최 신부님에 대하여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최 신부님은 생전에 성모신심회에 가입하실 정도로 성모님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이 있으셨다고 하는데 어제 성모님께서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최 신부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라는 뜻에서 신앙의 고향 절두산 성지로 인도하여 주셨다고 믿습니다.


최 신부님은 참수형으로 순교하신 것은 아니나 12년동안 목자로서 전국방방곡곡을 불철주야로 다니시면서 신자들의 성화를 위하여 헌신적인 희생을 하셨으며, 기해박해의 순교자들의 행적을 정리하시는 등 실로 다방면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제가 아직은 최 신부님의 행적에 대하여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번에 관련 글을 읽으면서 당시 한국천주교회의 기둥과도 같은 분이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으며, 파리외방전교회의 주교님과 신부님들도 기대를 많이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런 최 신부님이 그리도 젊은 연령에 천국으로 떠나신 것은 당시 한국천주교회를 위해서도 대단히 불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 신부님이 선종하시기전, 예수,마리아를 부르셨다고 하는데 이를 통하여 평소의 최 신부님의 신심에 대하여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참수형이 아니신 관계로 공식적인 순교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시어 복자품과 성인품의 반열에 오르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인도하심으로 2016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하여 시복의 전단계인 가경자로 선포되셨다는 것이며, 현재 로마교황청에서 시복결정이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 신부님의 생전의 헌신적인 행적에 비하여 볼 때 이미 103위 성인까지 배출된 상황에서 소외되셨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으며, 하루빨리 시복되시어 복자품의 반열에 오르시길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2018년 9월 23일(일) 박관우 역사작가 올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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