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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어제를 어쩌라고! ◆ 허근(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22 조회수645 추천수4 반대(0) 신고

                                             *원종인님에게 빌려온  사진                 

 

 

'어제를 어쩌라고'   

 

어느새 날이 밝아오네

딱 한 잔  하려했는데

벌써 두 잔 세 잔 넘어서

 병 두 병 세 병도 모자라니

앞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겠네

내가 어디 있는지 조차도 모르겠는데

어느새 날이 밝아와

지난 밤 후회만이 이 가슴을 짓누르네.

                                 (시집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중에서)

 

 

술을 좋아하고 마시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해 봤음직한 고백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스며있는 자괴감과 후회, 절망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이 시를 쓴 사람이 천주교의 신부라면

당신은 어떤 느낌을 가지겠습니까?

 

천주교 신부라는 신성한 신분으로 새벽까지 고주망태가 되어

앞에 누가 있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를 정도로 취해 있었다면....

 

이 시는 내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서 방황하던 시절

나의 솔직한 고백의 한 단면입니다.

 

가톨릭 사제의 길을 걷기 어언 20 여년,

항상 하느님 가까이에서 생활한다고 하면서도 하느님 부르신의 참뜻을

깨닫기는 참으로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때는 알코올 중독으로 흐트러진 삶 속에 회의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를 부르시어 알코올 중독자 사목을 담당하게 하신

하느님의 뜻의 오묘하심에 그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며

털썩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동병상련이라 했습니다.

같은 병을 앓고있는 사람이 그 병의 아픔을 가장 잘 안다는 말입니다.

 

10년이 넘도록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 중에 있었던 나였기에,

알코올 중독의 괴로움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처하고 싶습니다.

 

이제 칠흑같은 암흑에서 벗어나,

고통이 컸기에 고통에서 벗어난 기쁨이 또한 얼마나 큰 것인가를 느끼며,

하느님께서 다시 주신 나의 삶을..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모두를 바치자고 굳게 다짐합니다.

 

다시는 나와 같은 고통을 당하는 이가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뿐입니다.

알코올 중독은 중독자 본인에게 우선 책임이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어찌보면 공동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알코올 중독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중독자 자신이 술로 인해

가정이나 사회에서 많은 문제점을 일으키면서도

" 나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다" 하면서 계속 술을 마시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을 병으로 인정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술 문화도 강요하는 음주 방식과 술에 대해서

너무 허용적인 것도 문제입니다.

 

나는 알코올 사목 센터에서 상담하면서,

심각한 경우에는 병원으로 인도하고,

가벼운 경우나 퇴원 후에는 단주를 계속할 수 있도록 치유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해 사목하면서 기쁨과 보람도 느꼈지만,

어떤때는 슬프고  가슴아픈 순간들도 있습니다.

 

어떤 중독자가 어머니와 누나에게 이끌려져 나의 사목 센터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얼굴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를 보자마자,

"우리 할머니 장례미사를 술에 취해서 드렸던 신부 아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깜짝놀랐고, 그는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술에 취한 신부가 미사를 했는데 돌아가신 할머니가 과연 천당에 갈 수

있었겠냐?" 고 하였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가

" 그 당시에 당신은 건강한 음주자였지만, 나는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치료를 받고 건강해 졌지만,

  당신은 오히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버렸군요"

하면서 그를 설득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하였고, 현재는 단주를 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일흔이 훨씬 넘으신 할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며 할머니와 아들이 찾아와서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할아버지는 위험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으신 분,

평생을 마셨던 술을 적당히 마시도록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입원 치료를 권하지 않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전화가 와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술김에 할머니를 밀쳤는데 할머니가 쓰러지면서 탁자에 머리를 부딪히고

기절을 하시자, 그때 할아버지가 죄책감에 못이겨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할아버지에 대해서 나의 잘못된 판단이 그분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생각에 얼마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매우 괴로웠습니다.

지금까지도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차제에 간절히 청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막상 치료를 받고 새 삶을 살아가는데 정말 괴로운 것은..

과거를 되집는 것입니다.


" 허 신부가 그전에는 술에 취해 신자들을 구타했대."

  자리만 옮겨도..

" 허 신부 또 치료를 받으러 갔나 봐."

 

정말이지 어제를 어쩌란 말이냐?

생각 할수록 가슴 아프고 괴롭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과거입니다.

과거에 내가 잘못한 사람들에게 생각날 때마다

그분들을 위해서 간절한 속죄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안타까움을 어찌하랴...

 

나는 오늘의 새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오늘도 술 없이 즐겁고 맑은 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알코올 중독자와 가족들을 만나러 가톨릭 알코올 사목 센터로 발길을 옮깁니다.

 

" 주님, 전에는 술로 인해 슬펐지만 술이 없는 지금은 기쁨이 넘쳐요.

  주님, 전에는 술로 인해 텅 빈 마음이었지만 술이 없는 지금은

  충만함이 넘쳐요."

 

 

< 중간에 레지오 단원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은 생략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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