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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운 선생님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21 조회수817 추천수15 반대(0) 신고
5월 21일 부활 제6주일-요한 15장 9-17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운 선생님>


‘초보신부’ 시절, 소규모 아동복지시설 책임자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제가 주로 담당했던 일은 아이들의 학부형 역할이었습니다. 새로 온 두 아이의 전학수속을 밟기 위해 가까운 초등학교를 찾았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반 배정 담당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서류를 작성하고, 배정된 반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난감해하는 선생님들의 표정에 저 역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저는 당시 선생님들 머릿속에 ‘특별한 보호자’, ‘기피인물’로 각인되어 있었는데, 몇몇 선생님들은 제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그러시더군요.


“요즘 우리 반에 문제가 많아서요. 죄송하지만 다른 반으로 데리고 가시면 어떨까요?” “왜 하필 또 우리 반입니까?”


선생님들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그래도 전학 왔으니 최소한 반배정은 받아야 되겠는데, 다들 저희 아이들을 안 받겠다고 하시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 난처한 순간 인자하게 생긴 어머니 선생님 한분이 제게 다가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걱정 마세요. 저희 반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한번 노력해보지요.”


두 아이에게 다가가신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당신 품에 안으시고 등을 토닥거려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잘 왔다! 애들아. 그래,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앞으로 나랑 같이 잘 한번 지내보자. 파이팅!”


물론 그 뒤로 그 선생님 저희 아이들 때문에 죽을 고생을 다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가출을 시작했고, 반평균 출석률과 반평균 점수를 대폭 깎아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싫은 기색 한번 하지 않으셨습니다. 장기 가출 끝에 집에 돌아온 아이들을 타일러서 학교로 데려갈 때 마다 선생님께서는 따뜻한 얼굴로 아이들을 맞아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잘 해보자고 격려하셨습니다. 그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두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의 마음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웠기에 졸업식이 끝난 뒤 아이들과 함께 인사를 드리러 교실로 찾아갔습니다. 선생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적막하던 다른 반 교실과는 달리 그 교실은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선생님과의 작별이 못내 아쉬웠던 아이들은 선생님 주변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학부모들은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거듭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다시 아이들과 교실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교실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텅 빈 교실에 홀로 남아계셨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교탁 위에 엎드려 울고 계셨습니다. 흐느끼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희 아이들도 따라 울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위해 한없이 인내하고 헌신하셨던 선생님, 아이들과의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텅 빈 교실에서 홀로 남아 울고 계신 선생님의 뒷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사랑’이군요. 요즘 사랑의 실체, 사랑의 본모습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봅니다.


사랑이란 뭔가 대단한 것, 특별한 그 무엇, 눈길을 확 끄는 그런 것이 아니리라 저는 믿습니다. 한 순간 확 불타올랐다가 유성처럼 즉시 사라지고 마는 그런 것이기 보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것, 생활 한 가운데서 매일 이루어지는 그 무엇임을 저는 믿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있는 이벤트성 행사이기보다는 삶 가운데 매일 지속적으로 실천되는 것이리라 확신합니다. 마음 깊숙이 머물러있는 그 무엇, 머릿속에만 박혀있는 그 무엇, 말로서 이루어지는 그 무엇이 아니라 구체적인 생활 안에서 가시화되는 그 무엇이리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은 가만히 앉아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위해 움직입니다. 상대방을 향해 구체적인 배려를 시작합니다. 상대방을 기쁘게 만들어주기 위해 부지런히 아이디어를 짜냅니다. 상대방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깁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위해 매일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매일 자신을 온전히 바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매일 자신을 소멸시켜나갑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조금 더’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를 요구합니다. 남들이 누구나 다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조금 더 진한 사랑, 조금 더 폭넓은 사랑, 조금 더 깊은 사랑, 조금 더 사심 없는 사랑, 조금 더 큰 사랑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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