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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천주교회 희망의 아이콘 최양업(토마스) 신부 선종 157주년 추모(3)
작성자박관우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29 조회수1,497 추천수0 반대(0) 신고

최양업 신부의 조부 최인주는 부인 이씨와의 사이에 3형제를 두었는데 부친 최경환(프란치스코)은 그 중에 3남이었다.


최경환은 1804년(순조 4)생으로서 어려서부터 칠극(七克) 등 교리서를 숙독하며 공부하는 등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15세에 이성례(마리아)와 혼인하였는데 이성례는 이존창의 딸 멜라니아의 조카딸이 된다.


이와 관련해 최경환이 이성례와 혼인하면서 최양업 신부와 김대건 신부가 친척이 된다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김대건 신부의 증조모 이 멜라니아가 이존창의 딸이 되고 최양업 신부의 모친 이성례가 이존창의 손녀가 되기 때문에 최양업 신부와 김대건 신부는 진외 6촌형제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최경환이 일상 생활에서 실천한 덕행이 어떠하였는가는 최양업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신부에게 보낸 편지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을 인용한다.


[ 저의 아버지는 교육은 별로 받지 못했으나 자주 묵상하고 신심독서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열렬한 애덕과 우리 교의의 신비에 관하여 훌륭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일할 때나 쉴 때나 집에서나 들에서나 길을 걸어갈 때나 항상 천주와 결합하여 아버지는 종교와 신심에 대한 이야기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너무나 힘차고 순박하고 설득력이 있어서 모든 이의 마음에 천주에 대한 사랑과 그 종에 대한 감탄의 정을 불어 넣었습니다.


천주이신 스승의 영광을 위한 그분의 열정은 이웃에 대한 애덕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이 장을 보러 갈 때에는 그중 싸고 나쁜 것을 골라서 사며 그것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지꺼기를 사는 사람이 없으면 이 불쌍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소”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애덕은 점점 자라나서 재난의 시기에는 영웅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곤궁하여지고 어디 가나 탄식과 실망뿐이었지만 아버지만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온한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이르러서는 교우들도 놀랐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듯 비탄에 잠길 필요가 있소이까? 모든 일이 천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들이 천주님의 자애로우신 섭리를 믿는다면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슬픈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까?” 하고 위로 말씀을 하였습니다.


흉년이 들면 아버지는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하며 불쌍한 사람들의 모든 고난을 돌봐 주고 과일 수확기가 되면 그중에 좋은 것을 골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었습니다.


비록 끊임없이 자선의 일을 하면서도 형제간의 우애가 깊고 어머니를 소홀하지 않고 가장 다정한 효도로 섬기었으며 집에서는 정해 놓은 시간에 기도와 신심독서를 공동으로 하였습니다. ]


이러한 서한 내용을 통하여 최경환의 열정적인 신앙생활이 훗날 최양업이 성직자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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