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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뭄 끝 단비 같은 고마운 존재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19 조회수1,081 추천수15 반대(0) 신고

5월 19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요한 15장 12-17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가뭄 끝 단비 같은 고마운 존재>


오랜만에 단비가 내리는군요. 모심기를 준비하시는 농부들에게 반가운 손님 같은 고마운 비입니다. 저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번 비로 단숨에 쑥쑥 키가 클 모종들 생각하니 흐뭇할 뿐입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우리가 서로에게 ‘가뭄 끝 단비’와 같은 반갑고도 고마운 존재여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시는데,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오래 기다리던 단비처럼 존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요?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스트레스의 원천이 아니라 행복의 원천, 기쁨의 원천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업무 차 지방에 갔다가, 돌아오니 꽤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버스가 끊어져 택시를 탔습니다. 게다가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목적지를 대니 기사님의 얼굴에 조금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꽤 외진 곳이거든요. 게다가 강의록이랑 영적독서 책을 넣어 안주머니가 불룩한 새까만 잠바를 입었지요.


그럭저럭 집 가까이 도착했는데, 비도 많이 오고해서 수련관 건물까지 100미터 정도만 올라가면 되니 조금 더 올라가자고 부탁드렸습니다. 난색을 표하시더군요. 긴장된 얼굴로.


그 순간 약간 기분이 묘했지만, 기사님의 입장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아무소리 않고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비가 내리는 한밤, 만만치 않게 생긴 사람이 불빛도 없는 으슥한 곳으로 올라가자니 얼마나 겁이 나셨겠습니까? 요금을 받자마자 총알처럼 달려 내려가시더군요.


비를 맞고 수도원으로 걸어 올라오면서 혼자 킥킥 웃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생각하면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그분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우리가 눈만 뜨는 외치는 사랑이란 것, 특별한 것이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 상대방 입장에서 서보는 것, 나 자신을 비우는 것, 나란 존재를 내세우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육체가 이끄는 대로 행동하기보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이 결코 다가 아니기에 보이는 것 그 너머의 것을 보고자 노력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딱딱하기 그지없는 나란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오랜 허물을 과감하게 벗어버리는 일, 그래서 결국 하나의 깨달음에 이르는 일, 결국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존재, 사물, 상황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임을 자각하는 일이 사랑이 아닐까요?


결국 사랑은 부드러움, 강요하지 않음, 겸손, 떠남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꽃이 저리 아름다운 것은 자기 자태를 뽐내지 않기 때문이고,

무지개가 저리 고운 것은 잠시 머물다 가기 때문입니다.


겸손, 떠남, 그것은 사랑, 아름다움의 가장 큰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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