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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10.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10 조회수2,027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 11, 1-4(연중 27주 수)

 

 오늘 <복음>은 흔히 주님의 기도로 불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준 기도를 전해줍니다. 먼저, 이 기도의 두 가지 배경을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루카 11, 1)

 

 <첫째 배경>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이 제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분의 기도하는 모습 속에서 지금까지 유다인들에게서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의 유다인들은 12세 이상의 성인이 되면 매일 아침과 저녁에 신앙고백으로 들어라 이스라엘아(신명 6, 4~)로 시작되는 쉐마 기도를 의무적으로 바쳤고, 18개의 축복기도문으로 되어 있는 셰모네 에쉬레 기도를 아침, 오후, 저녁이 시작되는 시점에 규칙적으로 바쳤으며, 회당에서 설교 후에는 카디쉬라는 기도를 짧은 형식의 응답기도로 바쳤는데,) <마태오복음>의 병렬복음에 따르면,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주로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 서서 위선자들처럼 드러내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또 빈 말로 많은 말로 되풀이하며 이방인들처럼 기도했던 것입니다(마태 6, 5-8).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와는 반대로, 골방에 들어가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시고, 또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시는 아버지시기에 빈 말이나 길게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그들의 관습적이고 의례적인 기도와는 그 모습이 달라도 너무도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의 하나가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묻게 됩니다.

 <또 하나의 배경>은 당시 로마의 억압과 과도한 새금 징수와 종교인들의 부패 속에서 종교적 민족적 메시아 대망사상을 담은 부흥운동 그룹들이 나타나 그들의 열망을 담은 기도문들을 가르쳤고, 세례자 요한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그 제자는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기도를 가르쳐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주님의 기도의 탄생 배경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새 공동체의 원리와 삶과 질서를 담은 새 기도문이 요청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곧 새로운 나라, 새로운 공동체로를 향한 혁명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태오복음>에서는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윤리와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 산상설교의 중심에 이 기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곧 새로운 나라의 삶의 원리와 질서를 말하고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또 다른 특성>으로, 이 기도는 저희에게 가르쳐주십시오.”라고 청해진 기도이며,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라고 하신, 개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들의 공동체에 주어진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처음 시작부터가 충격입니다. 하느님을 단지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압바라는 친밀함으로 부르시며,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건네주십니다. 곧 인간인 저희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원과 지위로 들어 올리십니다. 저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시어, 당신과 함께 아들인 성자의 반열에 들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시편작가의 노래를 실현하십니다.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시편 82, 2)

 

 우리는 이 특전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을 통하여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충격은 그냥 압바가 아니라, 우리 압바인 것입니다. 곧 복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한 형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우리에는 시제가 없습니다. 곧 과거의 선조들과 예언자들을 포함하여 미래의 하느님의 자녀들까지를 포함하여 우리라는 형제 가족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로서의 삶의 원리가 기도로 주어집니다. 곧 하느님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이들에게 걸 맞는 삶이 소명으로 주어집니다. 곧 자녀로서의 삶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다름 아닌 자녀의 길을 걸어갑니다. 오로지 아빠 아버지께 속해 있는 아들, 딸로서,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길을 걸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게 하는 일이요, 자신이 바라는 나라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나라를 이루는 일이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생명의 빵으로 선사하신 당신 아드님을 양식으로 삼는 일입니다. 곧 당신의 아드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며,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일입니다. 또한 아빠 아버지의 일이신 용서하는 일을 하는 것이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시련이나 유혹과 악에서도 아버지를 신뢰하는 일이요, 자신이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의탁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유혹과 악을 제거해 달라거나 없애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지 않게 구해달라고 아버지께 청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것을 통해서 아버지께 마음이 향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곧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 속에서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것을 통하여 아버지를 만나는 일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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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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