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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7) 공작새와 말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16 조회수672 추천수1 반대(0) 신고

 

 

5월 초에 제주도로 여행 갔을 때 이야기입니다.

렌트카를 타고 수많은 곳을 지도를 보며 네비게이션에 길을 물어 다니는데 한림공원이라는 곳을 갔을 때 일입니다.

동굴 구경에 수많은 식물, 나무, 꽃, 돌을 구경하다가 공작새가 있는 새장 앞에 갔습니다. 수많은 하얀색 공작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새장 가운데에 커다란 항아리를 엎어놓은 그 위에 공작새 한마리가 올라서 있었습니다.

높은 항아리 키도 모자라 그 길고 아름다운 흰색 깃털은  길게 늘어져 바닥을 덮고 있더라구요.

공작새나 꿩은 수컷이 아름다운 깃털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항아리 위의 그 공작새도 길고도 아름다운 깃털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수컷일 거라고 생각했지요.

땅바닥에 있는 수많은 공작들은 꽁지가 뭉떵 잘려나간 것처럼 볼품없는 깃털을 하고 있는걸 보면 아마 암공작이었을 것이고, 오직 항아리 위의 그 한마리만 아름답고도 긴 깃털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 숫공작은 몇분 동안을 지켜보아도 그 자세대로 비스듬히 옆으로 한 자세로 마치 팻션 쇼를 하는 모델처럼 포즈를 잡고 있는 거였어요.

다른 녀석들, 꽁지가 뭉떵 잘려나간 듯 볼품없는 암컷들은 바닥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모이를 찍어먹고 있는데 항아리 위의 숫놈은 배도 곯으며 그러고  있는가 봅니다.

그 좁은 항아리 밑바닥에 올라서서 얼마나 힘들고 불편할텐데 그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는 겁니다.

마치 성장을 하고 여인들을 유혹하는 사교계의 바람둥이처럼, 제 아름다운 몸매를 과시하는  듯한 그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자니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답니다.

얘야 ! 어지럽구나! 좀 편한 자세로 있으면 안되니? 힘들어서 어떻게 그러고 버티니? 멋진 폼도 좋지만 너무 힘들어 보인다. 바닥에 내려와서 좀 주저앉아 쉬려무나.

 

우리가 그 앞을 떠날 때까지 그 공작은 항아리 위에서 여전히 멋진 포즈로 내려올 줄을 몰랐습니다. 한마리의 그 숫공작은 누구를 위해 그렇게 에너지를 소모하며 그러고 있는지.....

 

얼마를 달려가다가 말목장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넓은 그 목장에는 말 형상을 한 동상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움직이고 있는 말들도 보였습니다.

천천히 차를 몰다가 세웠습니다.

말 동상들이 어찌나 정교하고 멋지던지 한 번 자세히 보기 위해서였지요.

마주보고 있는 말 두 마리가 한발을 마치 스텝 밟듯이  뒷굼치를 가볍게 쳐들어 다른 한쪽발에 살짝 갖다 붙이고 서있는 모습은 너무나 날렵하고 아름다워 보이더군요.

그런데 동상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보자니 등에 달린 말갈기가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걸 보고 동상이 아니라 진짜 말인줄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너무나 긴 시간을 고개를 약간 숙이고 발뒷굼치를 들어올린채 미동도 하지 않는 말의 모습은 깊은 명상에 잠긴듯, 상념에 잠긴듯 아주 심각한 분위기를 하고 있어 감쪽같이 동상인줄 속았던 겁니다.

그들의 포즈 또한 팻션 쇼를 하는 모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팻션 모델들이 공작새나 말에서 그런 멋진 포즈를 배워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야! 진짜 말이다. 진짜야.

길가에 차를 세우고 울타리 앞에 서서 보던 몇몇 다른 사람들도 그게 궁금해서 그랬는지 탄성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저녀석들한테 완전히 속았네!

참 대단하다 너희들......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을  고 동작으로 버티고 있는 거니?

누구에게 잘 보일 일이라도 있는 거니?

 

그러면서 문득 나는 누구에게 그렇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런 치열한 노력을 한 적이 있는가, 잘 보이기 위해 그런 고통을 인내한 적이 있었던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군요.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했다는 생각, 미인은 괜히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공작새와 말을 보면서 참 많은 묵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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