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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름 부르기 (쑥부쟁이)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11 조회수2,286 추천수0 반대(0) 신고


 

이름 부르기 (쑥부쟁이)

- 윤경재

 

 

제 이름 모르는 채 들국화라 홀대해도

연보라 뽐내거나 노란 꿈 비교 않네  

바람에 흔들거려도

속정 깊은 누이여

 

불쟁이 아버지와 동생들 헌신 봉양

무심한 나무꾼과 노루도 감동하고

죽음도 차마 못 하여

들꽃으로 피웠네

 

벼랑을 넘어서는 여여한 징검다리

못다 부른 사랑이 숨결을 되살렸어

괜찮잖아 누군가의 꽃

깊은 가을 사르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보통 꽃 이름에는 설화가 많이 담겼다. 수선화, 달맞이꽃, 목련, 에델바이스, 매화 등등. 이야기가 담기면 꽃을 기억하기도 좋고 특별히 애착이 더 간다. 쑥부쟁이도 설화가 담긴 꽃이다. 그럼에도 그 모습을 제대로 알고 기억하는 사람이 적다.

 

우리는 자주 가을 들판에 핀 국화 계통의 꽃을 들국화라고 쉽게 부른다. 그러나 사실 꽃 중에 들국화라는 건 없다. 우리가 조금은 무식하고 또 무심한 탓에 세심히 구별하여 부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는 같은 국화과 식물로 비슷한 모양, 비슷한 시기에 피어나는 꽃이라 헷갈리기 정말 쉽다. 그러다 보니 이들을 들국화라고 뭉뚱그려 불렀던 거 같다. 여북하면 안도현 시인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을 ‘무식한 놈’이라 부르며 함께 들길을 걸어온 걸 후회한다며, 절교하겠다고 외쳤겠는가.

 

 

무엇인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른다는 건 그 대상이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는 걸 뜻한다. 내가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어쩌면 그 대상은 내게 존재하지 않은 거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내 친구 하나가 중견 기업에서 퇴직을 하고 커피 전문점을 내었다. 그와 이야기 하던 중에 귀한 지혜를 얻은 적이 있다. 그런 영업점은 대부분 아르바이트생 문제로 골머리를 썩인다. 한두 달 붙어 있으면 다행이고, 조금만 수가 틀려도 말없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들은 터였다. 그런데 그의 가게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오래 근무하는 게 아닌가? 늘 찾아가도 익숙한 얼굴이 나를 기억하며 반갑게 맞아주는 거였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도 그들을 기억할 수밖에.

 

그의 주장은 이랬다. 기업에서 관리직을 오래 맡다보니 인적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돈을 벌어다 주는 게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복이 곧 재운이라 말하는 까닭을 이해했고 그걸 실천했을 뿐이라는 거다. 그는 새 직원이 들어오면 멋진 명찰을 새겨 선물한다고 한다. 가능하면 바리스타 누구라고 크고 명확하게 보이게 썼다. 그러고는 자기도 그들 이름에 ~, ~님이라고 존칭어를 붙여 불렀다. 한번도 ‘미스 김, 미스터 리’ 같은 약칭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했다. 또 자기도 이름표를 가슴에 붙이고, 누구라도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한다.

 

처음 출근하는 직원의 이름을 잘 기억하고자 매 말머리 마다 이름을 붙여가며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름을 잘 기억해주니 아르바이트생들도 마음을 열고 접근하더라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의논하며 지혜를 구하기도 하고, 최신 유행어 등도 서슴없이 가르쳐주더라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나도 설득을 당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을 잘 정리한 책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은 수사학이 있다. 거기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의 세 가지 요소를 강조한다. 이 셋 중에 에토스가 제일 중요한데 말을 꺼내는 사람이 풍기는 ‘윤리적 신뢰’를 뜻한다. 평소에 발화자가 나타내는 삶의 태도가 어떠한지가 설득의 첫 번째 요소라는 거다. 한마디로 말의 씨알이 먹히려면 말하는 사람의 윤리적 온당함이 태도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한번 믿고 따라보겠다는 의지가 생긴단다.

 

윤리적 신뢰인 에토스의 시작은 상대방을 자신만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겠다는 태도에 달렸다. 이런 태도에는 범위에 제한이 없다. 윗사람이나 아랫사람, 심지어 부부나 자식들 아니 동물에도 적용된다. 에토스는 나와 상대방 사이를 가로막은 냇물을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내 친구는 평소에도 상대방의 이름을 잘 기억해서 귀하고 정답게 불러주어 윤리적 신뢰인 에토스를 쌓아나갔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공감 가는 말과 논리로 설득했다. 또 자연스럽게 인생의 멘토 역할도 해주었다. 모든 직원이 만족하니 주인의식을 갖고 충실히 일했다. 덕분에 매장 분위기가 늘 밝아 진심에서 우러난 서비스가 좋아졌고, 단골손님이 늘어났다. 옆에 경쟁 업체가 들어와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어떤 가게 주인은 요즘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무책임하고 따지려들기만 하고 돈만 안다고 푸념한다. 그런데 가만히 그런 연유를 들어보면 주인이 직원을 소홀히 대접하는 게 눈에 보였다. 대부분 돈을 받는 만큼 열심히 일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며 자기만의 논리를 앞세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인복이 돈을 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요즘 세간에 물의를 일으켜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CEO들의 행태는 대개 이런 ‘윤리적 신뢰’인 에토스가 결여되어 생긴 것이다.

 

쑥부쟁이 설화는 대충 이렇다. 어느 산골에 가난한 불쟁이가 열둘이나 되는 대가족과 곤궁하게 살았다. 불쟁이는 아마도 대장장이나 숯가마에 불을 지피는 사람일 것이다. 심성이 올곧은 큰 딸인 쑥부쟁이는 들로 산으로 다니며 쑥을 캐어다가 나물과 쑥떡을 지어 식구들을 먹였다.

 

어느 날 산에 올랐다가 상처입고 도망치는 노루를 만나 상처를 감싸주고 숨겨주었다. 노루를 무사히 보내고 돌아오다가 함정에 빠진 사냥꾼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칡넝쿨을 잘라다가 함정에서 꺼내주고 보니 바로 노루를 쏘아 맞힌 도령이었다. 외모가 수려하고 듬직한 도령이었다. 도령은 감동해 자기를 구해준 보답으로 다음 해 가을에 다시 찾아올 것을 약조하고 떠나갔다. 이듬해 가을 쑥부쟁이는 꽃단장을 하고 산에 올랐으나 도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도령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움이 커 갔으나 쑥부쟁이는 원망하지 않고 자기 일에 충실하였다.

 

세월이 흘러 그녀의 엄마가 병에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쑥부쟁이는 목욕재계하고 정화수를 떠 놓은 채 산신령께 빌었다. 그러자 몇 년 전에 구해준 노루가 나타났다. 노루는 노란 구슬 세 개가 담긴 연보라 주머니를 건네주며 말하였다. 이 노란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빌면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녀는 첫 번째 구슬을 입에 물고 엄마가 병에서 낫기를 빌었다. 그러자 곧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신기해서 두 번째 구슬을 물고 오매불망하던 도령을 만나고 싶다고 빌었다. 역시 순식간에 도령이 나타났다. 그러나 도령은 이미 혼인하여 자식을 둘씩이나 둔 처지였다. 금세 자기 잘못을 뉘우친 도령이 함께 살자고 말했으나 심성이 바른 쑥부쟁이는 그럴 수 없었다. 이미 혼인한 그의 부인과 아이들을 떠올리며 노란 구슬을 다시 한 번 입에 물고 가슴 아픈 소원을 빌었다. 도령을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이렇게 귀한 소원구슬을 다 써 버렸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찼으나 첫사랑을 잃은 쑥부쟁이는 다른 사람과 쉽게 결혼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늙고 병든 불쟁이와 어머니보다 단 하루만 더 살아 편히 모시길 바랄 뿐이었다.

 

어느 날 더 좋은 쑥을 캐려다가 그만 절벽에서 미끄러져 죽고 말았다. 그녀가 죽고 난 자리에 연보라 꽃이 지천으로 피어났다. 사람들은 그녀를 떠올리며 그 꽃을 쑥부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체 높은 가문의 도령이었던 사냥꾼은 자신을 구해준 맑고도 씩씩한 쑥부쟁이를 통해 자신의 이상형을 발견했었다. 그래서 즉시 사랑을 고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상대방에게서 투사된 자신의 이상형을 찾으려 했을 뿐이었다. 상대방의 꿈과 고유성을 인정하는데 서툴렀다. 자신의 이상이 눈에서 멀어지자 곧바로 다른 대상을 찾았다. 그를 통해 자신의 이상형을 구한 것이다. 이런 심리 속성을 라캉은 남성강박증이라 불렀다. 남성강박증환자에게는 서정주 시인이 노래한 국화 같은 누님의 이미지가 생겨날 수 없다. 도령은 아마도 그녀의 이름도 잊고 얼굴도 모르는 채 살았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이상형을 찾아 헤매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고유성과 유일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첫 번째 길이 바로 상대의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03816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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