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산교구 황철수 주교님] 택시기사 체험기/ 끝
작성자조경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16 조회수657 추천수5 반대(0) 신고
"빨리 빨리' 세상에 묵묵히 걸으며
10. 천주교에 갈까요 개신교에 갈까요

 토요일 늦은 밤. 젊은 여성을 태우고 도시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는 데 손님의 휴대전화 통화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내일은 안돼. 세례식이 있어서 성당에 가야해…"

 가톨릭 신자인 게 분명했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손님을 모셨지만 신자라고 확신이 드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뒷좌석 자매가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해서 말을 꾸며 물었다.

 "제 집사람이 종교를 갖고 싶어 하는데, 천주교에 나갈까 개신교에 나갈까 망설이고 있어요. 난 성당에 갔으면 하는데 집사람은 개신교에 마음이 더 가나봐요. 손님은 어디를 권하고 싶으세요?"

 그 자매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마음대로 가라고 하세요"하는 게 아닌가.

 순간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다양한 종교가 분포하는 한국사회에서 가톨릭을 선택한만큼 가톨릭의 긍정적 측면을 열심히 설명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자매는 자기 종교가 제일이라고 떠들어대는 편협한 사람이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그런 엄청난 관용(?)을 보여줬는지도 모른다.

 자매가 가톨릭 신자로서 어떻게 호교론적 주장을 펴는가 떠보기 위해 질문을 더 던져보았으나 대답은 역시 미흡했다. 자매의 생각을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아직 종교가 없거든요. 신앙생활을 한다면 천주교에서 하고 싶은데…"

 자매는 "마음이 진정으로 가는 종교를 선택하라"고 강조했다. 그나마 가톨릭에는 남모르게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조금 언급하기는 했다.

 자매의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자신의 종교를 내세우기 위해 타종교를 깎아내리지 않는 가톨릭 신앙인의 성숙한 측면도 있겠지만, 참 종교의 진리를 설파하는 적극적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매는 베드로 1서 3장 15절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게 해주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11. 수녀님 꼬시는 택시기사

 손님을 찾으러 다니는 빈 택시 운행은 정말 피곤하다. 손님을 태우고 가면 미터기 요금 올라가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는데.

 오전 9시30분, 출근시간 뒤라 거리가 한산했다. 무작정 빈 택시로 수영2호교를 통과하는데 손에 묵주를 들고 다리를 건너는 수녀님이 눈에 띄었다.

 그냥 지나치다가 선심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세운 뒤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수녀님, 어디가세요? 제가 태워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아~ 타시래도요. 어차피 빈 차로 가는데…."

 수녀님은 연신 사양하면서 계속 걸었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몰고 따라가면서 "저도 신자입니다. 해운대로 가는 길인데 타고 가시면 어때요"라며 계속 권유했다. 누가 봤다면 수녀님 꼬시는 못된 놈으로 오해했을 성싶다.

 수녀님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맙다면서 택시에 올랐다.

 수녀님이 세례명이 뭐냐고 물어보길래 바오로라고 대답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금방 수녀님 목적지인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세상 사람들은 온갖 탈 것들을 이용해 정신없이 달린다. 정신없이 속도 전쟁을 벌이다 어느 순간 멈춰서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또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게 현대인의 삶이다.

 묵묵히 걸어 다리를 건너는 수녀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대인의 삶과 너무 대조적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보기 좋았다. 손에 묵주를 들고 걷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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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년을 이용해 지난해 3월 한달간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느낀 점을 두서없이 정리했다. 보잘 것 없는 체험이지만 성직생활을 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울러 교우 여러분과 체험을 나눈 것이 더 없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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