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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나라'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12 조회수630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미 뵌 것이다.>(요한 14,6-14)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 * * * * * *


병원 입원실에 여러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었는데 창가에 있는 자리에 입원한 사람도 있고 안 쪽 자리에 입원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중환자이기 때문에 거동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창 쪽 자리에 입원한 사람이 안쪽에 입원한 사람에게 창 바깥을 보고 창 바깥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안 쪽에 입원한 환자들에게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오늘은 날씨가 어떻고, 어떤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지 하늘의 구름이 아름답다는 등 매일 매일 창 쪽에 입원한 환자가 안 쪽에 입원한 환자에게 창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재미있게 전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이 두 환자는 매우 친하게 가족처럼 지내면서 지루한 병원 생활을 잘 극복하며 지냈다.

 

매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면 창 쪽에 있는 환자는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을 잘 보고서 안 쪽에 입원한 환자에게 이야기 해주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고 안 쪽에 있는 환자는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커다란 낙이었다. 그것이 이들에게는 서로 지루한 병원 생활을 재미있게 지내는 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서서히 안 쪽에 있는 환자가 창 쪽에 입원한 환자를 질투하기 시작하였다.

 

자기가 그 자리에 있으면 자기가 보고 싶을 때 얼마든지 바깥 세상을 볼 수 있고 일일이 저 사람한테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될텐데 자기는 안 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다고 속으로 투덜거리고 불평하였다.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까 예전에는 창 쪽에 있는 사람이 매일 들려 주는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감사하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하나도 재미가 없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점 점 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그 사람이 입원해 있는 그 자리에 대한 욕심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안 쪽에 있는 환자는 매일 어떻게 하면 자기가 그 자리에 갈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였다.

 

안 쪽에 있는 환자가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이는 점 점 더 좋지 않게 되었다. 안 쪽에 있는 사람이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했지만 말과 행동에서 예전 같지 않게 창 쪽에 있는 사람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어도 안쪽 사람은 하나도 재미가 없고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한 미운 감정이 더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창 쪽에 있는 사람의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졌다. 호흡 상태가 불규칙적이고 급박한 상황이 되었다. 빨리 의사를 불러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할 급박한 상황이었다. 안쪽에 있는 사람이 간호원에 연락을 해서 그 사람이 위급하다는 상황을 알려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그 동안 창 쪽에 있는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 매일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기에게 들려 준 고마움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안 쪽에 있는 사람은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는 그 사람을 위해서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 쪽 사람은 그 사람이 죽기를 바랬고 죽어가게 놔두었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기가 그 사람이 있던 그 자리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바깥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될 터니까 말이다.

 

결국 창 쪽에 입원한 사람은 죽었고 안쪽에 있던 사람이 자기가 원했던 대로 그 자리로 옮겨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막상 창 쪽으로 와 보니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옆에 큰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답답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건물 벽뿐이었다.

 

평소에 그 사람이 매일 매일 아름답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은 그 사람이 바깥 세상을 보고 이야기 해준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그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들이었다.

 

창 쪽에 입원했던 환자는 안 쪽에 있는 자기가 심심할까봐 자기 나름대로 매일 매일 동화 같은 이야기를 엮어서 아름답고 재미있게 들려 주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매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겠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매일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가 얼마나 지루한 병원 생활을 그래도 즐겁게 지낼 수 있었는가를 생각하니까 더 할 수 없이 그 사람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이 자리가 탐이 나서 그 사람을 질투하고 죽을 위험이 있을 때 오히려 죽기를 바라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했던 자기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하면서 자기의 잘못을 크게 뉘우쳤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란 누구인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께 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서 본 아버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아버지를 알고 보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야지만 알 수 있고 또 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본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볼 수 없다. 볼 것이 없으면 보지 못하듯이 아무리 안쪽에 있던 환자가 창쪽의 자리로 옮겨왔어도 그 전에 있었던 사람이 본 것을 보지는 못한다.

 

 자리를 옮긴다고 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눈을 갖고 있어야 보는 것이다. 자리 자체가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는 눈이 보는 것이다. 창쪽에 있었던 환자가 볼 수 있었던 상상의 나래는 그 사람만이 볼 수 있고 펼칠 수 있는 세계이었다.

 

 그 누구도 그가 갖고 있는 상상의 나라를 대신해서 볼 수 없다. 동화같은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그려낼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이야기도 전해 줄 수 없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의 나라를 보는 사람들이요, 하느님의 나라를 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아버지의 나라를 볼 수 있도록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 보여 주셨는데 우리가 보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아버지의 나라를 볼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길을 닦아 놓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를 볼 수 있는 길이 있다.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길이 있다. 그 길을 걷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길을 걷더라도 절대로 그 나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나를 보지 못하는 삶, 아버지를 보지 못하는 삶이 기쁠 수 있겠는가?


매일 매일 아름다운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그 길, 진리, 생명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지 예수님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 길을 걸어가야 할 사람도 우리이고 그 진리를 알아야 할 사람도 우리이고 그 생명을 먹어야 할 사람도 우리 자신이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이 제시해 주신 길을 걷고, 진리를 알아듣고, 생명을 먹음으로써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답답하게 살아가고 있는 많은 입원 환자들에게 매일 매일 아름답고 재미있는 아버지의 나라를 전해줄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나라를 나에게도 전해주기를 바란다.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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