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택시기사 체험기 <3> / 황철수 주교님
작성자조경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12 조회수711 추천수7 반대(0) 신고

 

    애정어린 눈빛과 삶의 향기 5. 식당 아주머니의 향기 저녁 9시30분. 12시간 가까이 운전해 피곤한 터라 회사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한 아주머니가 차를 세웠다. 손님과 말하는 것조차 귀찮았다. 아무 말 없이 기계적으로 목적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한참을 가는데 아주머니가 입을 뗐다. "아이고, 기사님, 제한테서 음식냄새 많이 나죠?" "(반찬냄새가 좀 나기는 했다) 아닙니다. 냄새는 뭐."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 주방에서 일하다보니 이 냄새를 어쩔 수가 없네요." 아주머니에게서 나는 냄새는 불쾌한 냄새가 아니라 하루종일 열심히 일한 사람의 좋은 향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사실 승객마다 냄새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은은한 향수 냄새에서부터 생선 냄새, 소주 냄새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말이 난 김에 하는 말이지만 술냄새 풀풀 나는 손님을 태우고 가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 모든 냄새는 겉에서 나는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향기는 내면에서 난다. 6. 길에서 길을 잃다 밤 12시가 넘으면 도시의 골목은 정적에 휩싸인다. 한낮 소음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가로등만이 어두운 골목에서 깜빡깜빡 졸고 있다. 택시기사 입장에서 이 시간대에 가장 ''물 좋은'' 곳은 교차로 부근 유흥가다. 연산 교차로 뒷길 주점 앞에서 젊은 여성을 태웠다. 명장동 어느 곳을 가자고 하길래 순간 당황했다. 그쪽 방면은 영 자신이 없었다. 그 여성의 퉁명스런 안내를 받아가며 목적지에 겨우 닿았다. 차량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주택가 깊숙한 골목에서 택시를 멈췄다. 여성은 요금을 낸 뒤 택시 문을 세차게 닫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어? 저기, 여기서 어떻게 나가야…." "…" 새벽 1시, 낯선 골목. ''이 좁은 데서 어떻게 차를 돌려 나가야 하나? 또 여기는 어디 쯤인가?'' 난감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둔 골목에 갇혀 한동안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겨우 ''출구''를 찾아 큰길로 빠져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생각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이처럼 낯선 길에 혼자 서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때로는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몸을 떨기도 한다.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런 순간에 처할 때마다 하느님은 우리 손을 잡아 이끌어주시지 않는가. 7. 손님이 돈으로 보였나 오늘은 회사에 내야 하는 돈(사납금)보다 많이 벌었다. 아침 일찍부터 작정하고 운전대를 잡은 덕분이다. 체험이기는 하지만 택시기사가 된 이상 사납금은 채워야 하는 게 기본 아닌가. 하루를 정리하며 오늘 내 택시에 오른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학교에 늦었다고 재촉하는 고등학생, 근심어린 얼굴로 경찰서에 가자고 했던 아주머니, 대낮부터 술냄새 풀풀 풍기던 아저씨, 아이들 데리고 병원가는 아주머니, 기름냄새 나는 정비소 아저씨…. 그런데 이상하게도 딱 이렇다 할 그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이토록 떠오르는 게 없을까. 그 이유는 돈 벌려는(?) 욕심에서 그들을 승객으로만 대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오늘 많은 사람을 만났으나 그들의 삶과 인생까지는 만나지 못했다. 돈을 벌려고 작정하니까 사람이 돈으로 보인 것 같다. 관점이란 이렇게 중요하다. 시인은 우리가 평범하게 보아 넘기는 꽃 한송이, 구름 한 점에서 아름다운 시어를 이끌어낸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세상과 사람을 애정 어린 눈으로 보지 않으면 어느 누구에게서도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없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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