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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바리사이 콤플렉스)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25 조회수2,310 추천수0 반대(0) 신고

 


바리사이 콤플렉스

+찬미예수님!

어제는 일기예보에

오늘 많은 비가 온다고 해서

교우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태풍을 관장하는 천사와

조촐한 술자리를 해서든

어떻게든 피해가도록

할 테니까 나만 믿으시오.”

했더니 교우들이 웃었어요.

오늘 어떻게 됐죠?

여러분들 등에 비 한 방울

한 묻었고 바람이 불어서

촛불이 꺼지지도 않았습니다.

94일 미국에 강의를

하러 갔었습니다.

1주일 강의 후 휴가로

교우들과 함께 바이크투어

계획을 세워났는데,

허리케인이 우리가 가는 방향

맞은편에서 올라온다고

그러는 거예요.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주변 신자들은 말렸죠.

허리케인은 자동차도

날라 다니게 하고,

트레일러가 넘어가고

얼마나 바람이 셉니까?

내가 그래서 그랬죠.

아무 걱정하지 말고,

비는 조금 맞을 각오는 하고

일단 떠나자.’

6일 동안 25백마일(miles)

바이크로 여행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매일 아침에

미사를 봉헌했고

그 미사의 힘이 허리케인을

막아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제 카페에

들어오시면 찍은 사진들이

올라와 있으니 한 번 보세요.

여러분들 오늘 태풍이 올까

갈등 겪으며 오시지 않았죠?

여러분들도

태풍이 물러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오셨지요?

오늘 우리들은 참회의 예절에서

참회의 기도 대신에

성수를 축성해서 뿌렸어요.

우리 교우들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성수대를 만납니다.

놀랍게도 성수로

몸을 축성을 하고

자리에 앉는 신자가

40프로가 안 돼요.

그날 미사 은혜의 성공 여부는

성수로 제 몸을 씻고 마귀를

쫓아내는 기도부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성수를 맞는 신자들이

영과 육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수를 칩니다.

성수를 축성하는 것은

칠성사가 아니라

준성사라고 합니다.

준성사는 그 성사의

집전자의 믿음과

성사를 받는 사람의

믿음에 따라 달라집니다.

믿음을 가지고 성수와 소금을

축성하는 사제의 마음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교우들이

내 영혼을 정화시킨다는

마음으로 그 성수를 맞는다면

기가 막힌 하느님의

은총이 이루어지고,

그 성수를 통하여

많은 능력이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성수를 축성하는

신부도 형식으로 해 버리고

성수를 맞는 교우들도

믿음없이 성수를 맞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겁니다.

오래 전에 성모님 성지인

감곡본당 신부로 있었을 때 일입니다.

감곡성당은 전국에서 사제,

수도자가 제일 많이 나온 곳으로

신부, 수녀 없는 집이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 교우들이

허겁지겁 올라오더니

신부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성당 바로 밑에 빈 집에

무당이 들어왔대요.

세상에 천주교 성모님의 발밑에!

믿기지 않아 밑을 봤더니,

대나무 하나가 쭉 올라오고,

노란 깃발, 빨간 깃발이 펄럭여.

여기가 어디라고 무당 깃발을

뻐젓이 올리고 왔을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

교우들보고 기도하라고 했어요.

저도 기도했죠.

저는 무엇보다도

성수의 강한 힘을 믿었어요.

그래서 밤마다 성수를

두꺼운 주사기에 담아

무당이 사는 집 지붕에 뿌렸어요.

사탄아 물러가라.‘

그 무당이 10월에 들어왔는데,

그 다음 해 1월까지 뿌렸어요.

2월이 되자 교우들이,

신부님, 기쁜 소식 전합니다.

무당이 이사 간다고 짐을 싸요.’

무당이 이사 간다고 하니까

교우들이 가봤나 봐요.

무당이 이런 동네인 줄

모르고 왔다 하며 옷을 들어

몸을 보여 주더래요.

그런데 온몸이

부스럼덩어리 이더래요.

밤에 꿈을 꾸는데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지고.

아침에 보면 그 자리에

부스럼이 있더래요.

무당이 꿈꿀 때가

바로 제가 성수를

뿌린 시간이란 말이에요.

무당은 가재도구도

제대로 못 챙기고

바로 36계 줄행랑을 쳤지요.

성수의 힘을 믿고 뿌리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힘이 있어요.

여러분 본당에서 참회예절,

고백의 기도 대신에

성수를 축성해서 뿌린다면,

그신부님은

훌륭하신 분입니다.

혼란스러울 때는

전통으로 돌아가야 된다.’

제가 늘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런 환란의 시대,

혼란의 시대일수록

가톨릭의 중요하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바로 그러한 것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 가톨릭은

희망이 없습니다.

요즘 영성신학에서

바리사이 콤플렉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성서에서 나오는

바리사이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바리사이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사이가 어떤 사람이기에?

바리사이는 영성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얘기할 때

변태적인 사람의 상징입니다.

사람들이 괴로워하면

위로하는 척하지만

정작 그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리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던지

예수님은 성서 곳곳에서

조심하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함부로 타인을 단죄하는 사람

바리사이 콤플렉스에

걸려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기도생활을

열심한 분들을 적어도 한 번은

걸려 넘어지는 과정입니다.

교회, 사회 어느 곳이든

이런 바리사이들은 늘 존재합니다.

사람보다는 법을 중요히 여깁니다.

사랑보다는 미움을,

치유보다는 단죄,

자기통찰보다는

남의 잘못을 더 잘 봅니다.

대개는 남의 잘못을 잘 캐내는

사람일수록 열등감이 강합니다.

자기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기도의 양을 늘립니다.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할 때

바리사이 콤플렉스에

걸리기 쉽습니다.

바리사이 콤플렉스는

남도 망가트리지만 자기도

망가트리는 무서운 질병이죠.

독성이 강하고 처음에

교정하지 않으면 바리사이

콤플렉스에 걸린 채로

죽게 됩니다.

감염 시기는

어느 때로 봐야 되느냐?

나의 잘못보다 남의 잘못이

더 잘 보일 때다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바리사이들은 주님의 선행을

집요하게 비난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마음이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마음의 건강과

깊은 연관성이 있지요.

마음이 건강하면

기도생활도 즐겁지만,

마음이 건강치 못하면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은총으로 마음의

건강을 회복해가는 과정입니다.

영성심리학에서는

죄를 지었을 때

죄인이라고 하지 않고

마음의 병에 걸렸다고 하거나

아직 덜 성숙하였다고 말합니다.

, 윤리적으로 죄인이냐

아니냐는 흑백논리로

나가지 않고 병리적인

진단을 통해 병을 치유해줄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윤리신학과

영성심리학의 차이입니다.

그럼 마음이 건강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하니,

본인의 상태를 살펴보십시오.

첫 번째 기준은 분노가

내 안에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합니다.

마음이 건강할수록 분노가 적습니다.

분노가 적다는 것은 분노를

참고 산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전에 화를 냈던 일에

지금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면

마음이 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노를 품고 분노가 쉽게

일어나는 사람은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절대 볼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대인관계의 폭이 넓어집니다.

그러나 마음이 건강치 않을 때는

이 사람엔 이것이 싫고

저 사람엔 저것이 싫다고 합니다.

내 편과 네 편으로

확실히 구분하고 삽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음식을 가리고

건강한 사람이 아무거나

잘 먹듯이 말입니다.

세 번째로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스스럼없이 얘기합니다.

무슨 척을 하지 않습니다.

있는 척, 기도 많이 하는 척,

봉사 많이 하는 척,

그런 것을 하지 않습니다.

척 하는 것은 사실 자기가

갖지 못한 사실을

타인이 알게 될까봐

두려워 벽을 치는 겁니다.

그런 벽은 너무나 얇고

쉽게 부서집니다.

그리고 쉽게 들통이 납니다.

네 번째로 마음이 건강할수록

자기 이야기만을 하게 될 겁니다.

특히 자신의 마음 상태를

얘기하고 도움이 되는 얘기를

들으려고 합니다.

마음이 건강치 못할수록

남의 얘기를 많이 하고

가르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는 눈의 들보를

먼저 꺼내라고 하십니다.

자기 눈에 들보가 박혀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티를 가지고

시비를 겁니다.

다섯 번째로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참으로 좋습니다.

조그만 꽃을 보고도

마음이 기쁘고 작은 물건을

보고도 고마워합니다.

마음이 건강치 못할수록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무딥니다.

아름다운 눈이 없기 때문이죠.

여섯 번째로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압니다.

그러나 건강치 못한 사람은

그저 죽지 못해 산다고 합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닌

어중간의 삶,

할 수없이 산다고 합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웃

을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병든 사람은

화낼 일만 많습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유머와 여유로 일하지만,

마음이 병든 사람은

경직되어 일합니다.

서두에 얘기해 드렸습니다.

바리사이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들은 감염 증세를

어떻게 스스로 안다고 그랬죠?

내 잘못보다는 남의 잘못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걸려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를 보고 바리사이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고,

비록 바리사이가 하는 말은

지키더라고 바리사이의 행동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바리사이는 마음이

건강치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얘기한 일곱 가지의

기준에 그들은 해당됩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짧습니다.

저는 어저께 제 작은 고모님의

장례미사를 서울에 올라가서

하고 왔습니다.

올해 구십 셋 되신 분입니다.

그런데 큰 고모님은

백 한 살이세요.

큰고모님이 작은고모님을

돕기 위해 한 집에 계셨는데,

작은고모님이 먼저 가셨어요.

미국에 계신 고종사촌 누님들과는

20년 전 작은 고모부 장례미사에

만나고 처음 만났죠.

20년 전의 젊은 누이들의

얼굴이 생각났는데,

그날 제대에서 보니

할머니들이 앉아 있어요.

저는 다시 청주로 내려와야 되니까

장지까지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누이들의 손을 잡고,

누이들을 끌어안고

우리 또 언제 다시 봐.’

이 짧은 인생 징징거리고

살면 안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기쁨이지요.

그래서 미사 끝에 늘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기쁘게 삽시다.’

미사를 드린 신부도

기쁘게 살아야 되고,

미사에 같이 참석했던

교우들도 기쁘게 삽시다.

신앙생활 하면서 얼굴이

어둡고 마음이 병 들었다면

하느님 얼굴을

어떻게 쳐다보겠는가?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바리사이처럼 살지 말고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합시다. 아멘.

(2018106일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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