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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가장 유혹적인 힘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11 조회수886 추천수11 반대(0) 신고

 

 

『평화에 이르는 길(The Road To Peace)』中 에서
헨리 나웬(Henri Nouwen)신부님/존 디어 엮음/성바오로

 

 

"그때가 되면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지상에서는 사납게 날뛰는 바다 물결에 놀라 모든 민족이 불안에 떨 것이며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 올 무서운 일을 내다보며 공포에 떨다가 기절하고 말 것이다.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루가 21, 25-26>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이 같은 혼란의 시대를 맞으면 하느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자신감을 갖고 조용히, 그리고 평화로이 머물라고 당부하신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공포감을 유포하는 자들을 따르지도, 스스로 구세주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몰려 가지도, 떠도는 전쟁소문이며 혁명 소문에 놀라지도 말고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루가 21,28>라고 말씀하신다.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은 평화 만들기의 구성요소가 아니다. 이 점이 자명해 보일지 모르지만, 세계전쟁의 위협과 맞서 싸우는 많은 이들이 사실은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고 있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행동하도록 만들기 위해 두려움을 이용하기도 한다.

 

 

두려움은 평화만들기에 가장 유혹적인 힘이다.

 

 

핵무기에 관한 이야기들과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 벌어질 상황에 대한 설명들은 엄청나게 끔찍한 것이며,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평화의 수호자로 만들기 위해 그 두려움을 이용하는 쪽으로 쉽게 기울곤 한다.

 

 

수많은 영화, 사진, 그림책들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어 마음과 정신을 변화시키려는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기승을 부리는 악마의 권세를 아주 구체적인 방식으로 상기할 필요가 있지만, 그 주된 결과가 두려움의 증폭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동일한 세력의 좋은 먹이가 되고 만다.

 

 

평화만들기가 두려움을 토대로 이루어질 때, 그것은 전쟁만들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경우에 평화운동가들은 전쟁활동가들이 사용하는 것과 다른 낱말들을 사용할지라도, 실제로는 똑같은 언어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싸우고자 하는 상대들의 전략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평화만들기는 사랑의 사업이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1요한 4,18> 평화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심오하고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의 체험에서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안에서 기뻐하는 사람들만이 진정한 평화운동가가 될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낄 때 자유로워져서 죽음의 벽 너머를 바라보고 두려움 없이 평화를 이야기하며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는 그 같은 사랑의 체험에 이르는 통로인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사랑할 줄 알기 이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신 분과 친교를 맺는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기도 중에 계시받는 것은 바로 이 첫 번째 사랑이다. <1요한 4,19참조>

 

 

우리가 하느님의 집에, 기도가 언어가 되는 그 집에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의 비난이나 칭찬에 그만큼 덜 매이게 되며, 우리의 전존재를 바로 이 첫 번째 사랑으로 채울 수 있을 만큼 훨씬 더 자유로워진다.

 

 

우리가 남들이 우리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고 좋은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고자 애를 쓰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자신이 살고 있는 어둠의 세계에 갇힌 채 기만당하게 된다.

 

 

이 어둠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가치를 평가하는 주위 사람들의 판단에 신경을 쓰게 되어 있다. 이곳은 성공과 실패로, 승리와 퇴장으로, 찬사와 비난으로, 인기인과 패배자로 이루어진 세계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쉽게 상처를 입고,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쉽게 그 상처를 행동으로 표출한다.

 

 

우리는 이런 세계에 붙잡혀 있는 한 자신의 참된 자아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어둠 속에서 살게 된다. 우리는 더 큰 성공, 더 큰 찬사, 더 큰 만족이 우리가 갈구해마지 않는 사랑받는다는 체험을 가져다 줄지 모른다고 기대하며 우리의 거짓 자아에 매달린다.

 

 

그리고 이런 풍토는 쓰라림과 탐욕, 폭력과 전쟁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그러나 기도에서는 우리가 찾고 있는 사랑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우리도 이 같은 사랑체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하여 확인하게 된다.

 

 

기도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우리를 사랑으로, 사랑만으로 빚어내신 분과 친교를 이루는 것이다. 바로 거기 첫사랑안에 우리의 참자아가, 우리가 함께 사는 이들의 배척이나 포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를 존재로 부르신 그분 안에 굳건히 뿌리 내린 자아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집에서 창조되었다. 그리고 그 집으로 돌아가도록 부름받고 있다. 기도는 돌아가는 행위이다...!

 

 

† 찬미 예수님, 사실 저도 핵무기등 죽음의 위협에 대한 공포감과 두려움을 많이 느껴, 평화에 대한 갈망을 깊게 염원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갈망하는 제 염원이 혹 두려움은 아닌지 이 글을 읽으며 제 마음 속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십시오.

 

   소녀의 기도

 

굿 뉴스 전산 오류로 벽지 사용과 이미지 사용이 안되어 나중에 다시 수정할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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