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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택시기사 체험기<2> / 황철수 주교님
작성자조경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11 조회수745 추천수13 반대(0) 신고
    3. 과정의 시간

     택시를 운전한 지 이틀째다.

     마음이 덜 초조한 게 약간 여유가 생긴 듯하다. 운전대를 처음 잡은 어제는 승객이 낯선 곳으로 가자고 할 때 정말 난감했다. 승객이 택시에 오르자마자 길부터 묻는 게 택시기사로서 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오늘은 배짱도 약간 생기는 것 같았다.

     서대신동 부근에서 가방을 든 아주머니가 택시를 세웠다. 초량 샛길로 해서 아미동 산복도로 윗쪽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초량 샛길을 몰라서 한참을 가다가 말했다.

     "초량 샛길쪽으로 빠질 때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그 부근을 잘 몰라서요."

     "택시운전한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죠?"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보십니까?"

     "아저씨는 아직 때가 안 묻은 것 같아서요."

     그 말은 아마도 택시기사로서 관록이 붙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날 비로소 한가지 의문에 실마리가 풀렸다. 처음 회사에 출근해서 동료 기사들에게 "초보입니다. 잘 부탁합니다"라고 인사했는데 다들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새 동료가 왔는데 왜 그렇게 냉담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이유는 내가 아직 택시기사로서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들과 어려움과 기쁨을 공유하기까지는 말없이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신앙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 당장 예수님과 친교 속에서 하루하루 평화롭게 살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막상 영세 뒤에는 교리실에서 만났던 사제와 수녀조차 오히려 멀어지는 것 같고, 영적 갈증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의아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신앙의 삶에도 묵묵히 견뎌내는 과정의 시간이 있다. ''예수님의 때''가 묻기 위해서는 십자가 의미를 공유하는 삶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4. 가장 어려웠던 점

     "택시운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사람들은 길을 잘 모르는 데서 오는 어려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운전대를 잡기 전에 부산시내 지도책을 펴놓고 지리공부를 하기도 했다. 큰 길만 알고 있던 나는 지름길과 연결 샛길이 그토록 많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운행 3일째 되는 날 한계에 부닥쳤다. 내 길눈으로는 택시운전해서 밥먹고 살기 힘들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택시 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 많은 샛길과 골목을 어떻게 다 익힌단 말인가. 그래, 바로 이거다. 손님들에게 초보임을 솔직히 밝히고 길을 가르쳐달라고 양해를 구하자.''

     이날부터 조금이라도 애매한 곳이다 싶으면 불필요한 자존심을 다 버리고 무조건 "죄송합니다. 길을 확실히 몰라서…"라며 길을 물었다. 손님들은 놀랍게도 하나같이 친절하게 길을 알려줬다. 어떤 손님은 내리면서 "앞으로 손님들이 ○○가자고 하면 저 큰 건물 앞에서 무조건 우회전하면 돼요"라며 친절을 베풀었다.  

     문제는 초보이면서도 초보임을 정직하게 말하기 싫어하는 자존심이었다. 택시운전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바로 그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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