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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63) 신체검사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10 조회수55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6년5월10일 부활 제4주간 수요일 ㅡ사도행전12,24-13,5ㄱ; 요한12,44-50ㅡ

 

        신체검사

                   이순의

 

 

말로는 <사내자식들은 일찍 일찍 군대로 보내야 철이든다.>고 주절거리고 다녔다. 그런데 오늘 막상 아들녀석이 병무청으로 신체검사를 간다고 하니까 심장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병무청이 어디에 있는지 장소를 묻는데도 시큰둥, 몇 시까지 가야하는지 묻는데도 시큰둥, 시큰둥, 시큰둥, 시큰둥! 자식이 크면서 느끼는 것은 부모님들이 얼마나 마음을 크게 비우며 늙어 가는지를 배우고 있다. 길안내 서비스가 되므로 병무청까지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가 또 자식한테 혼구녕이 난 엄마가 되고 말았다.

<지금 내가 유치원생이야? 유치원에 면접가느냐구? 군대 간다니까요.>

 

철은 들어야 하는 게 자식이지만 군대 같은데 안 가고 철이들면 얼마나 좋을까 싶으다. 내 기억으로 가슴저리게 기억되는 풍경은 큰오빠가 자대배치 받아서 떠나던 열차에서다. 큰조카도 군대를 갔다왔지만 내가 엄마가 되어서 본 어른의 시각이다 보니 대견하고 든든하고....... 그러나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본 큰오빠의 군 후송 열차처럼 가슴에서 눈물이 나던 기억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송정리역이라고 기억 된다. 소녀의 눈에 보이는 둥근 기둥모양의 가방이 큰오빠 보다 더 커 보였다. 큰오빠보다 더 큰 가방을 큰오빠가 어깨에 메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끝 줄 쪽에서 뱁새가 황새걸음을 걷는 것처럼 걸어오셨다.

 

나는 나의 큰오빠가 키가 작은지를 그때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큰오빠니까 항상 커 보였고, 가슴으로도 큰오빠랑 큰언니는 늘 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뒷 줄에서 행진하여 오시는 큰오빠를 보며...... 학교에서는 키가 큰 사람이 뒤에 서기 때문에 우리 큰오빠가 제일 커서 뒷 줄에 서신 줄 알았다. 그런데 장대같은 사람들을 이미 앞서서 보낸 시각의 잔상은 얼마나 얼마나 우리 큰오빠를 작아보이게 했던지! 그자리에서 엉엉엉 울고 싶었다. 우리 큰오빠를 저렇게 작아지게 해 버린 군대가 원망스러웠다. 그때 누군가 군대는 키가 작은 사람이 뒤에 선다고 알려주었다. 나에게 우주와 같았던 큰오빠가 작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가슴으로 슬픈 일이었다.

 

더구나 군인들의 가방이 큰오빠보다 더 크게 느껴졌을 때는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큰오빠는 굵은 팔로 하늘을 찌를듯이 저어가며 군중을 헤집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막내가 본 큰오빠는 변함없이 씩씩하고 용감하며 멋있었다. 수 많은 군중을 뒤로하고 국군 열차는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떠나가는 저 기차 속에 우리 큰오빠가 타고 있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 슬프고도 슬펐다. 내 자식이 군대에 가겠다고 신체검사를 받으러 간다는데 큰오빠의 자대배치 받던 풍경이 떠올라 어린 소녀의 슬픔이 그대로 밀려 왔다. 그래서 오늘은 어린 소녀의 마음으로 하루를 살았다.

 

자식이 대학생이 되고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경비가 많이 들었다. 교통비도 그렇고, 용돈도 그렇고, 자식은 자식대로 아껴서 쓴다지만 부모는 부모대로 많이 주지 못해서 안타까운! 그러나 지금 이 나라의 대학풍토가 다 그렇듯이 부모는 부모대로 염려되는 걱정들이 많아지고, 자식은 그 울타리에서 자유롭고 싶어하고, 그런저런 이유로인하여 에미가 되어가지고 자식에게 군대에 가서 철들어 오라고 잔소리를 늘어 놓았으니....... 당장에 후회되고, 당장에 취소하고 싶은!

어미의 심정이야 그러든지 말든지 아들녀석은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 건강한 청년이고, 잘 생긴 미남이고....... 시력이 쪼꼼 서운해도 군대가 면제 될 일은 없다.

 

몰인정하게도 자식은 여름이면 군대에 간다고 엄포를 놓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하루동안 너무나 많은 생각을 했다. 엄마들이 그러는데 자식이 군대에 갔다오면 금방 혼인 말이 오고간다는데...... 자식이 군에서 국가를 위해 땀 흘릴때 나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결심을 했다. 지금이야 아직 스무 살 미령한 나이이다 보니 책임론에서 걱정을 늘어 놓았지만 군대만 갔다오면 여자친구를 사귄다고 해도 굳이 말리거나 염려를 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군대라는 긴 의무기간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른다. 그러므로 공연히 정을 심어 두었다가 상처받을 일을 마련하지 마라고 어미로서 잔소리를 꼬리에 꼬리를 달고 산다. 군대를 다녀오면 그러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렇게 살았어도 자식의 시작은 조금이라도 달리해 줘야한다는 당연한 바람과 설계를 하며 오늘 하루를 보냈다. 짝궁의 일을 도와서...... 내가 운전도 해 주고, 짝궁을 태우고 산에도 가고 시장에도 가고, 장부정리도 하며 살고 싶지만...... 나의 바람은 짝궁이랑 동행하여 일하고 싶다. 그러나 여의치가 않으면 다른 일이라도 찾아서 할 것이다. 자식이 군대에 가서 나라를 지키는데, 자식이 어미의 품을 벗어나 엄마가 해 주는 밥을 기다리거나 빨래를 벗어 놓지도 않는데...... 무슨 노력이든지 멈추지 않을 참이다. 그 또한 하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짝궁을 도우라 하시면 짝궁을 도울 것이고, 허드렛 일을 하라하시면 허드렛 일을 할 것이고!

 

자식이 군대를 간다는데 오늘은 어멈이 정신을 가다듬으며 결심을 세우고 있다. 엄마가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 군대에 있는 자식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며 무탈하게 잘 있을 것 같다. 지성이 감천이라면 누가 지성을 드릴 것인지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짝궁하고도 이제는 싸우지 않을 것이고, 많이 벌지 않아도 꼬박꼬박 모아서 아들의 복학도 시켜 줘야 하고, 방 칸이라도 변변한 집으로 마련해서 장가도 보내줘야 하고, 이제부터는 나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미 살아왔으므로 이보다 나은 호사를 바라지 않는다. 장성한 자식의 삶의 질이 나 보다 나아야 하고, 직업도 든든해야 하고, 아내도 사랑스럽고 변함이 없는 여식으로 삼았으면 좋겠고...... 

 

혹시 만의 하나라도 성직의 길이 열린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또 신학대학을 가야한다. 모든 준비가 마련 되어야 성직을 가는데 헛마음을 덜어 줄 것이 아닌가?! 이래저래 주님만 알고 계실 자식의 진로를 가늠해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나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인도해 주시는 대로 마련하겠다고, 길을 열어주시라고, 청원을 드렸다. 혼인의 성사로 자식 하나를 주셨으니...... 이제는 내게 주신 내 자식의 부모이게만 해 주시라고 빌었다. 벌써 자식이 청년으로 커서 나라를 지키는 큰 몫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데 돌아 본 나의 인생은 허망하다. 내가 무엇을 일구고 무엇을 가꾸었는지?!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가꾼 것이 없다. 그런데 해 준 것도 없이 덜렁 자식 하나가 저절로 자라서 어른이 되어있다.

 

나는 내 자식이 군에 가 있는 동안 아들만 생각하며 쓸쓸해 하지 않을 참이다. 주님께 청원하여 아들 보다 더 열심히, 더 건강하게, 더 씩씩하게 살을 참이다.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고 믿는다. 주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룰 것인가?! 주님만이 모든 생명의 신비와 사랑을 가꾸실 수 있다.

내 가슴으로 결코 작아보인 적이 없는 큰오빠는 군 복무를 마치고 큰오빠의 자리로 돌아왔다. 벌써 30여 년 전에 어린 가슴으로 황망히 바라 본 군용 열차는 곧 내 아들이 타게 될 것이고, 금방 또 30여 년이 흘러 내 아들의 아들이 그 기차를 탈 것이다. 그럴 때 마다 수 없이 많은 엄마들의 가슴이 깊어질 것이고, 수 없이 많은 기도와 정성들이 감동으로 하늘에 닿아 그 은공으로 아들들은 철이 들고 어른이 될 것이다. 내 큰오빠도 그러했고....... 내 아들도 그럴 것이고...... 내 손자도 그래야 한다.

 

주님! 국방의 의무에 충실하고 있는 모든 장병들과 아들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세상의 모든 국가에게 평화를 주소서, 아멘!

 

ㅡ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요한12,50ㄱ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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