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택시기사 체험기 <1> / 부산교구 황철수 주교님
작성자조경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10 조회수735 추천수7 반대(0) 신고
"아저씨, 혹시 신부가 되려고 했던 것 아녜요?"

 
황철수 주교는 지난해 3월 안식년 기간에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는 동안
하루하루의 체험과 느낌을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교구와 교구민의 축하 분위기를 전하는 대신
웃음과 감동, 진솔한 고백이 묻어나는
황 주교의 택시운전 체험기를 4회에 걸쳐 소개한다.

 
택시운전 자격증,
신규교육 수료증 등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나니
이틀 뒤부터 일하러 나오라고 했다.
 
택시회사 사무실의 과장이라는 분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 같은데,
무슨 사연라도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뭐 여러가지 사정으로
여태 홀아비 신세입니다"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과장은 "성당 사무실에서 오랫동안 일했던데,
혹시 신부가 되려고 했던 것 아녜요?"라고 재차 물었다.
오랫동안 성당 사무원으로 일했다고 이력서에 적어놨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그럴 생각도 없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과장은 "신부가 됐으면 좋았을 양반인데…."라며
동정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중늙은이가 새로운 인생전선,
그것도 고달픈 택시기사로 나서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돌아서면서 ''저 양반이 천주교 신자는 아닌 것 같은데,
나한테서 그 방면(신부) 냄새가 나나''하며 속으로 웃었다.
 
3월5일, 택시회사에 들러 간단히 인사한 뒤
사장님한테서 택시운행 전 교육을 받았다.
사장님은 60대 중반 할머니다.
''운전기사들 밥해주는 할머니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모가 허름한 사장님이다.
 
소규모 택시회사라서 그런지
사무실과 기사대기실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사장 할머니는 한쪽 구석에서 작은 이불을 깔고 발을 묻고 있었다.
의자도 없는 좁은 사무실 한쪽에서 선 채로 운행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그야말로 간단명료했다.
사장 할머니는
"처음부터 욕심내지 말고 배우는 마음으로 하라"는
한 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배우는 마음으로 하라….''
 
어떻게 보면 그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서두르지 않는 신중한 운전도 실상은
배우는 마음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고,
기술이나 요령보다 배우는 마음 자세가 훨씬 더
손님에게 좋은 느낌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시내 골목 골목을 손바닥보듯하는 베테랑 기사에 비하면
나는 ''까막눈''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택시를 몰고 ''길을 나서는''
나는 무척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배우는 마음으로 한다고 생각하니,
길을 모르는 것이야 배우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한층 자신이 생겼다.
 
가식적 언사를 생략하고 한 마디 짧은 말로 교육을 하는
허름한 몸뻬 차림의 사장 할머니는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고수였다.
  
뒷좌석에 타고 다니기만 하던 택시를 난생 처음
몰고 나오니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했다.
우선 아파트가 있는 용호동 메트로시티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를 다 통과하도록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용호동 쪽으로 차를 돌려
용호동 천주교 묘지 입구까지 올라가서 차를 돌려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어떤 아주머니가 차를 세웠다.
순간 기쁘기도 했지만 어디로 가자고 할 지 몰라 잔뜩 긴장했다.  
 
"광안대교로 해서 해운대시장으로 가주세요"
 
''휴~ 해운대.
그쪽은 내가 좀 알지.''
 
그런데 광안대교를 지나면서부터 걱정이 생겼다.
해운대시장이 정확하게 어디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운대 역에서 우회전해서 가는
그 길 말이지요?"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조금 마음 편하게 차를 몰았다.
하지만 택시는 35만㎞나 운행한 오래된 차라 작동이 매끄럽지 못했다.
 
오후에는 부전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아주머니 한분을 태웠다.
양정의 어느 산비탈 동네로 가자고 했다.
한참을 가는데 아주머니가 뒤에서 "아저씨,
요금단추 안 눌러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목적지를 생각하느라 주행버튼 누르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나는 아차 싶어 그제서야 주행버튼을 눌렀다.
 
주행 요금은 1800원.
2000원을 받아 거스름돈 200원을 내줬더니
아주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갔다.
''나라면 거스름돈은 못 받을 것 같은데….''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냉엄한 생존경쟁의 세상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계속>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