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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등대풀꽃 이야기 / 전원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05 조회수738 추천수13 반대(0) 신고

아래의 글은 전원 신부님께서 소공동체 길잡이 카페에 올리셨던 글로, 제가 2년전 성모성월에 묵상방에 올렸던 글입니다. 등대풀꽃 사진은 별님이라는 필명을 가지셨던 친구가 올려준 것입니다.

 

 등대풀꽃 이야기

 

‘등대풀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을 아시는지요?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 풀은 꽃이름처럼 멀쑥한 키에 작은 등불을 켠 듯한 꽃을 피우는 야생초입니다. 이 보잘 것 없는 들풀 한 포기가 저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것은 ‘등대’와 ‘풀꽃’이라는 두 단어가 합성된 이 풀의 이름 때문입니다.

 

지독히도 방황하던 사춘기 시절, 저는 한때 등대지기가 되려는 꿈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캄캄한 바다와 외딴 섬, 파도소리와 밤하늘의 별들, 거기에 ‘등대지기’라는 아름다운 노랫말을 더하면 등대지기의 삶은 한 인생을 걸고 살고 싶을 만큼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제 가슴 한켠에 각인된 이런 등대지기에의 꿈 때문에 지금도 등대가 있는 항구나 섬을 찾아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기에 ‘등대’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는 그 자체로 작은 이 들풀은 제가 꿈꾸던 등대지기의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풀꽃’ 또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꽃의 이름입니다. 저는 언제부턴가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풀꽃들을 어떤 꽃들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굳이 예쁜 꽃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그저 ‘풀꽃’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모습, 아무도 봐주는 이 없어도 제 자리에서 피고 지는 풀꽃이야말로 우리 삶에 소박한 묵상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등대와 풀꽃이 합성된 등대풀꽃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소박하지만 거룩한 종교적 영역을 담고 있는 듯 합니다. 밤의 어둠과 고독을 감내하며 생명의 빛을 발해야 하는 등대, 그리고 세상 어디엔가 작은 모습으로 소리 없이 살아가는 풀꽃, 이 둘의 숙명적 만남은 ‘등대풀꽃’이라는 아프도록 아름다운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작은 풀꽃은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이 살아내고 싶은 삶에의 종교적 갈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저는 강론을 하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소리 없이 살았던 나자렛 시골 마을의 성모님을 풀꽃으로 비유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성서에도 별로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숨겨진 성모님의 일생은 깊고 그윽한 아름다움을 가진 풀꽃으로 이해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풀꽃 중에서도 우연히 알게 된 등대풀꽃은 우리들의 종교적 갈망 깊은 곳에 계시는 성모님을 한층 더 닮아 있습니다. 이 풀은 공교롭게도 봄에 싹을 내는 일반적인 1년생 식물들과 달리, 가을에 싹을 틔운 후 겨울을 견딘 다음 이듬해 봄에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굳이 겨울을 나기를 자초하는 고집스러움이 이 작은 풀꽃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등대풀꽃이 한방에서는 암이나 종기 치료의 약재로도 쓰인다고 하니, 등대풀꽃은 이름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우리들이 기대하는 성모님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등대풀꽃의 이런 숨은 아름다움이 대자연의 세계에 더 깊은 생명과 경이를 안겨 주듯이, 우리 교회 역시 세상 곳곳에서 풀꽃처럼 소박하게 살아가며 세상의 구원을 일구어 내는 신앙의 사람들 때문에 여전히 신비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등대풀꽃 같은 성모님은 이런 신앙인들의 모범으로 우리 한가운데 계십니다.

 

5월은 성모님의 성월입니다. 신학교시절 해마다 이맘때면 “성모성월이여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어머니 찬미하오리다...”라고 성가를 목청껏 불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연히 만난 등대풀꽃의 이야기는 저의 꿈을 일깨우는 5월의 성모님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등대’와 ‘풀꽃’이 하나로 엮어져 등대풀꽃이 되었듯, 제 삶의 소망들이 성모님의 삶을 닮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등대풀꽃으로 피어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 등대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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