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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광야는 과정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05 조회수833 추천수13 반대(0) 신고

 

                                            





    광야는 과정

     

     

    광야는 버려진 땅이다.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그 곳에 홀로 버려졌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사람에 따라서 황량하고 부족하다고,
    쓸쓸하고 외롭다고, 고통스럽고 힘들다며,
    작고 초라해진 자신을 느낄 것이다.

    광야는 우리 생을 지탱해 주는 기본 조건들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태양이 이글거려도
    그 열기를 피할 수 있는 나무 한 그루 없다.
    목을 축일 수 있는 시냇물도 없다.
    밤이 되면 기온이 급강하하여 살을 에는 듯 춥다.

    광야에는 어떤 생의 기본 조건들이 철저히 결여되어 있기에
    황량하고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광야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버려진 벌판,
    불모의 땅, 황무지뿐이요,
    들려오는 것은 태고의 적막을 담은 바람소리뿐이다.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광야는 어떠한가?
    내 안에 있는 황폐함, 부족함, 괴로움, 고통, 힘겨움, 목마름, 나를 초라하게 하고 지치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다 영혼의 메마름을 느끼고 있다.
    우리 안에는 영혼의 광야가 있다.
    우리 모두는 피조물로서 유한한 생명과 한계성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실존적 광야를 갖고 있다.
    우리는 누구도 천년만년 살 수 없다.

    이런 보편적 광야 외에도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광야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식 때문에 생이 광야가 되어서 고통스러울 것이요,
    어떤 사람은 배우자 때문에 생이 광야가 되어서 힘들 것이요,
    어떤 사람은 고부관계 때문에 생이 광야가 되어서 지쳐있을 것이요,
    어떤 사람은 미움 때문에 생이 광야가 되어서 메말라 있을 것이요,
    어떤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생이 광야가 되어서 늘 초라한 모습으로 서성거리며 살 것이다.

    각 사람 안에 있는 광야의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광야가 무엇인지 깊이 보고 깨닫는 것이다.
    내 안에서 그리고 내가 속한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참 자유와 해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광야가 무엇인지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광야는 자신의 바닥을 대면하는 빈 들이다.
    광야는 우리 마음 바닥 깊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우리 삶에 황폐함·외로움·목마름 등을 형성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보는 자리이다.

    자신의 바닥을 대면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벌거벗는 일이다.
    꾸밈없이 적나라한 모습이 되어서 자기 자신의 광야를 바라볼 때 그리고 그 광야를 형성하는 정체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 자신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 광야를 형성하는 그 무엇을 하느님 자비 앞에 바칠 수 있게 되고 그분께 구원과 해방의 은혜를 청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광야에 서 있는 시간, 빈들에 서 있는 시간은 조명의 시간이요, 반성의 시간이요, 하느님을 향한 탄원의 시간이다.

    광야는 과정이다.
    자유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할 중간 과정이다.
    자리가 바뀌었다고, 또는 시간이 경과했다고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외적인 상황이 바뀌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펜을 바꾼다고 해서 글씨체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존재 자체가 거듭나는 자기 정화와 자기 정립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것이 광야가 갖는 적극적 의미이다.
    광야는 존재 자체가 변화를 겪는 거듭남의 과정이다. 익숙했던 관습과 안주했던 세계를 버려야만 한다.

    그러므로 광야는 과거의 양식을 버리고, 과거의 인생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의 양식과 인생관을 갖기 위한 과정이다.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의 인습과 과거의 자아를 버려야한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안주해 왔던 세속 중심의 삶을 버리는 것이다.

    하느님께 도달하는 과정은 영혼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묻은 그 무엇을 털어내는 것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이 시를 지은 고승은 벗어놓으라 한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영혼에 묻어 있는 인욕의 때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영혼에 묻은 그 무엇을 털어낸다는 것은
    자기의 한 부분을 부수는 행위이다.
    이런 점에서 광야는 자기가 부서지는 자리이다.
    새로운 가치관을 위해서
    지난날의 가치관을 버리고 부서지는 시기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존재 자체의 변화를 겪고,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고,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광야는 우리를 깨달음으로 초대한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인생의 의미나 진리의 세계를 추구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우리에게
    광야는 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라고 초대한다.

    - 광야에 선 인간 / 송봉모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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